지금까지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냥 이상한 사람들을 만났을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비슷한 일이 이토록 반복된다면 이건 문제였다.

 

처음에는 몇몇 남자들이 연애로 이어질 법한 호감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아 질투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보다 잘난 사람도 많고, 실제로 연인으로 발전한 경우도 있는데 왜 나에게 저러는가. 내게 향하는 호감은 결국 이성적인 감정이 아니었고 사귀기까지 이어진 적도 없지 않은가.

 

몇몇 여자들의 행동도 마찬가지다. 나와 아무런 갈등도 없었는데, 갑자기 말을 무시하거나, 은근히 짜증내거나, 어떠한 사소한 것도 해주기 싫어하는 눈치가 저러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유독 대상이 되는 같은 착각인가?

 

이런 일들 대부분은 언급하기도 애매한 사소한 일로 끝나지만, 문제는 그중 일부가 진심으로 내게 시비를 걸어온다는 점이다.

 

아, 나는 뭘 착각하고 있는건가. 내가 그들보다 잘난 게 아니라, 그들이 나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서 시비를 거는 것이다.

 

학벌, , 외모, 직업, 그것도 아니면 외향적인 성격 면에서 어느 한두 가지는 나보다 나은 구석이 있으니, 남자들은 그러한 해프닝의 주인공이 자신이었어야 했고, 여자들은 나 정도의 호감은 가볍게 넘기고, 나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정작 자신에겐 관심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대시하는 나는 불안의 원천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의 괴리를 해소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신들의 시비에 대응하지 못하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그들의 사고방식이다.

 

이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내가 겪는 일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누구도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몸을 살짝 부딪히려 하거나, 은근히 멕이는 사소한 말을 던지는 , 초반의 작은 시비들은 반응을 떠보고 무시해도 되는지 파악하는 역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성적인 데다 대부분의 사람과 깊게 어울리지 않으며, 원만하게만 지내고 싶어 웬만한 일은 그냥 넘긴 내가 최적의 대상이다. 선을 크게 넘었을 때만 대응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계속 당하고 되돌아오는 것은 없으니 본인들은 신났겠다.

 

하지만 내가 어쩔 있는가? 나는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겹치는 일이 생기면 친해지고, 아니면 그냥 활동만 하고 와도 만족했다. 정도의 거리감이 가장 편했다.

 

아니, 단지 내성적인 성격만으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 작은 시비에 그때그때 대응하지 했으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거다.

 

 

학기 중, 전문연구요원(이공계 대학원 병역) 보충역 훈련으로 3주간 훈련소에 다녀왔다. 우리 생활관(내무반) 인원은 13, 대부분 20 초반이었고 나보다 나이 많은 형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학교의 군대식 문화를 싫어했기에, 쓸데없이 트집 잡히는 없이 훈련소 3주를 원만히 마치고 싶었다.

 

생활관에서 번호가 제일 앞순번이기도 초반에 내가 먼저 나섰다. 좋게 보면 솔선수범, 나쁘게 보면 '남한테 이래라저래라'. 신발을 매뉴얼대로 정렬하라거나, 중앙 방송이 나오면 TV 무음으로 하자는 등의 사소한 것들이지만, 초반에는 이런 것들이 크게 문제가 된다. 리모컨이 처음 배부되었을 때도 내가 먼저 잡아 채널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중앙 방송이 나오면 즉시 TV 무음으로 했다. 공지된 내용에 대해 미비한 부분이 없는지 매번 확인하고, 지키지 않으면 해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귀찮아 해서 하지 않으면 그냥 내가 했다.

 

나흘쯤 지나자 관리의 강도가 다소 누그러진 듯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초반에 형성된 분위기 덕분인지, 아니면 원래 성실한 사람들이 모여서였는지, 생활관에서 해야 일들을 항상 누군가가 도맡아 처리해 문제 없이 지낼 있었다.

 

한편, 초반이 지나니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일이 거의 없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고 싶어 하는 성향이 드러난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나를 보고 동기가 " 형은 초반에는 그러더니…"라며 지나가는 말을 던졌다. 나중에야 말이 '내가 생각보다 별거 없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뉘앙스였다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동을 위해 여러 소대 인원들이 모였을 , 방탄모의 번호표가 떨어져 뒤에 있던 생활관 동기가 붙여주었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던 같은 생활관 형도 번호표를 붙이는 시늉을 하며 방탄모를 머리를 장난처럼 치는 것이었다. 장난으로 넘기기엔 은근히 힘이 실려 기분 나빴다. 놀랐다. 형과는 별다른 마찰이 없었고, 오히려 초반 이후로는 다른 사람들을 챙겼었기 때문이다.

 

형은 초반에 내가 뭐라도 것처럼 행동했던 것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그렇게 해소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깨달았다. 옆에 있던 생활관 동기가 형과 대화시키려는 나에게 말을 걸었지만 나는 '됐습니다.'하고 짧게 말을 잘르고 넘어갔다.

 

그러나 그 직후 10분도 채 되지 않아, 조교 한 명이 어깨를 '비켜!'하며 치고 지나갔으며 21살 생활관 동기는 그걸 보고 피식 웃었다. 그 애를 노려보자 잠시 후 시선을 피했지만, 같은 훈련이 끝나고 복도를 지나가다 다른 생활관 인원 명과 연달아 부딪혔다. 아무 없다가 오늘따라 이런 일이 연속되는 , 내가 머리를 맞고도 그냥 넘어가는 보고 ' 녀석 나보다 만만했던 아니야'라고 생각한 분명하다.

 

21 동기는 후에도 앞에서 일부러 진흙을 튀길 걷는 은근한 시비를 이어갔다. 대응은 노려보는 것이었다. 그래도 계속되면 행동으로 나설 생각이었다. 다른 동기 명도 가끔씩 사소한 것으로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이제 와서 그런 것까지 지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초반에 나도 그렇게 요구했으니 뭐라 없어 그냥 했다. 하지만 나중에 청소 시간에 일부러 물을 쪽으로 뿌리는 보고 노려보자 그제야 눈치를 살폈다.

 

둘은 내가 초반에 뭐라도 것처럼 행동한 아니꼬왔던 것이다. 하지만 나도 단체 행동으로 내게 피해가 같은 훈련소가 아니었다면 결코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초반에 그렇게 하는 정답이었지 않는가. 그렇지 않으면 분명 혼났고, 거기다 요구해도 하면 내가 그냥 했다.

 

알고 있다. 이런 행동을 하는 뿐이고 다른 동기들은 내게 관심 없거나 호의적인 편이다. 사소한 시비이기에 다른 사람들도 뭐라 하지 않는 것이다.  외에는 사람들과 부딪힌 일도 없었으며, 나를 비웃은 21 생활관 동기는 후에 아닌 일로 칭찬을 분위기가 누그러진 했다. 형을 포함한 다른 동기들과도 별일 없이 지내다 마지막 날엔 단체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그런데 이렇게 화가 나는 걸까? 시간이 지나면 이런 시비가 걸리는 쪽이었으며, 이럴 바에는 완전히 타인처럼 서로 눈치만 보며 지내던 초반이 나았다.

 

11 , 정기공연이 끝나고 원형 탁자가 놓인 삼겹살집에서 뒷풀이를 가졌다. 주하와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고, 서로 인스타를 교환하면서 대각선에 앉은 연미와도 인스타를 주고받았다. 이제 동아리는 기말고사 준비로  3주간 휴식기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연미와는 인스타로 가까워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연미가 올린 인스타 스토리에 답장을 보내고, 번째로 연미가 동성 친구 셋과 작은 파티를 하는 스토리를 올렸을 , '나도 연미 님이랑 치킨 먹고 싶다' 답했다. 물론 흐름에 따라 만날 약속을 잡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답장은 없었다. 이유야 생각하면 끝이 없었고, 어느 순간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하길 그만뒀다. 그래도 이것만으로 단정 짓긴 이르다 싶어 크리스마스에 안부 메시지를 보냈지만, 역시나 답은 없었다. 휴식기가 끝나고 다시 봤을 , 연미는 눈치를 살피듯 이쪽을 잠깐 쳐다보고는, 후론 아무 일도 없었다.

 

새삼 연애시장에서의 위치를 같았다. 호감가는 점은 있어도 평균보다 약간 낮은 (168~170cm) 아직 안정된 직업이 없는 대학원생이라는 신분 사귀기에는 결정적인 요인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사귈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DT 동아리의 올해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새해가 되자 선배 기수들은 OB(동아리 졸업생) 되어 정기 활동에서 빠졌고, 장르별로 팀장이 선출되었다. 힙합 장르 인원은 나를 포함해 남자 4, 여자 11명으로 줄었다. 동아리 활동은 한동안 평화롭게 이어졌다.

 

어느 힙합 인원끼리 원을 이루고 프리스타일 춤을 연습하던 , 여자애 명이 갑자기 쪽으로 다가와  힙합 춤을 추고는, 무안했는지 빠르게 제자리로 돌아갔다. 내심 놀랐다. 말수도 적고 내성적인 친구라 지난 1년간 서로 엮일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있는 애여서, 딱히 의미를 두진 않았다.

 

또 다른 한명은 가끔 주변을 기웃거렸다. 마찬가지로 남자 친구가 있었지만, 좋게 보면 관심의 표현이고, 나쁘게 보면 한번 찔러보는거다. 내가 어떤 이성적 관심을 표현하면 바로 모른 척할 뻔하고, 친해질 생각도 없기에 저런 행동에서 끝난다. 그래도 그런 행동이 다소 귀엽고 기분 좋은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 단체 안무 연습 고개를 숙이다가 들었는데, 마침 앞을 주하가 지나갔다. 순간 주하는 '방금 OO 선배랑 키스할 뻔했어'라며 옆에 있던 문수에게 장난스럽게 말했다. 문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누나, 그럴 때는 저리 비켜 말하고 선배 밀쳐야 . 알았지?'라고 성희롱이라도 듯한 말투로 말했다. 주하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그날 이후로 주하는 단체 안무 나와 가까워지기만 하면 나를 세게 밀쳤다. 번째 그런 행동이 반복되자 화가 '야 밀지마' 라고 쏘아붙이고 나서야 주하는 그런 행동을 멈췄다. 뒤로는 주하와 되도록 거리를 두었다.

 

작년부터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던 명은 다시금 얹짢은 내색을 드러냈다. 그중 명인 문수는 올해 동아리 부회장이 되었고, 이후로 인솔 등으로 내가 뭔가 말할 거리가 생기면 나에게 소리를 높여 말하는 것이었다. 춤을 때리는 듯한 동작을 쪽으로 향하거나, 몸이 아슬아슬하게 부딪힐 지나가고, 내가 연습 중이면 일부러 앞에 거울을 가리는 행동이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넘겼지만, 갈수록 심해져 맞대응하려 해도 문수는 교묘하게 내가 방심하고 있을 때만을 노렸다. 나보다 체구도 훨씬 작은, 계속 저러는지 모르겠다. 문수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동아리에 들어와 나와 9 차이가 나지만,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 분명했다. 오히려 자신보다 상대를 이렇게 지속적으로 은근히 자극하고 밀치는 것을 문수는 자기 능력이라 생각할 것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대처하는 방법이 부족했고, 문수는 그걸 정확하게 파악했다.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 한마디 하려고 문수에게 다가가려다, 순간 울컥하는 감정에 잠시 주저앉고 말았다. 갑자기 울분이 쌓여 제대로 말이 나올 같았다. 그사이 타이밍을 놓쳐 문수는 친구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버렸다. 다음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5분 뒤 편의점에서 문수와 마주치고, '거울 가리지마.', '?', '너가 자꾸 나한테 시비 거는 같아서', ', . 알겠습니다' 교류를 거친 대충 대답하는 같아서 ' 계속 그러면 진짜 맞을 알아!' 소리쳤다. 그 뒤로 남은 마지막 연습 한 번은 별일 없이 지나갔고, 동아리는 다시 기말고사를 위해 휴강기에 들어갔다. 그렇게 2년차 1학기 활동이 끝이 났다.

 

시간이 흘러 10월이 되었고, 동아리는 11 정기공연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같이 연습실 바닥에 앉아 리허설을 보던 , 연미가 앞에 앉었다. 연미는 같은 힙합 동기로, 이전에 외부 리허설 장소로 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쳐 전공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후로는 별다른 접점이 없었는데, 그날 연미가 아빠다리한 정강이에 살짝 등을 기댔다. 전해지는 체온에 열이 있어 혹시 감기에 걸린건가 싶었다. 괜히 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날 이후, 연습 연미와 눈이 마주치는 일이 잦아졌다.

 

팀장도 이를 눈치챈 듯했다. 연미의 안무를 지적했고, 연미는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팀장은 그동안 연미가 내성적이지만 묵묵히 연습에 참여해 만큼 크게 뭐라고 적이 없었다. 팀장으로서 당연히 있는 말이기는 했지만, 평소에는 아무 없다가 이러는 행동이 눈에 띄었다. 예전 주하가 지각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지각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다가, 나와 자주 겹치는 일이 생기니 갑자기 " 지각했니?" 하고 짚고 넘어갔다. 뭐라 하기도 애매했고, 단지 그것뿐이니 큰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호감은 시간과 함께 점점 쌓였다. 어느 , 서로 안색을 살피다가 갑작스럽게 눈이 마주쳤고, 풋풋한 분위기가 흘렀다. '이렇게 연미와 사귀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내가 조금 떨어진 곳에 있을 팀장이 얘들에게 뭔가 주문사항을 전했지만, 들리지 않았다. 이내 음악이 흐르며 단체 안무가 시작되었고, 바로 앞에서 팀장이 내게 "!" 하고 소리쳤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하지 못한 그대로 안무를 이어갔다. 곡이 끝나고 나자, 팀장이 앞에 있었다.

 

너무 화가 나면 신경이 근육에 집중된다는 그때 깨달았다. 화를 내려고 해도 말이 나오지 않고, 몸이 떨렸다. 머릿속에는 ‘이대로 칠지 말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동안 노려보다가 그냥 앉아 분노를 삭였다. 큰일 없이 동아리 생활을 계속하려면 내가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팀장은 남은 시간 동안 태연하게 웃고 떠들며 연습을 진행했다. 이제 시원한가 보다.

 

갑자기 이런 행동이 나온 것이 아니다. 이전에도 단체 연습 흘리듯 반말을 적이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러니 이번에 대놓고 "!"라고 소리친 것이다. 하필 오늘 이런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내가 행복해 보이는 꼴보기 싫은 것이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점은, 이렇게까지 뭔가 없었던 적 없었는데 애만이렇게까지 하느냐였다. 시선만 주고받다 흐지부지된 일이 한두 번이 아니고, 3개월 쯤을 마지막으로 내게 호감이 있는 눈치도 없었다. 팀장이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하고 듯한 날도 있었는데, 이제 와서 저러는 건가?

 

봐도 뻔했다. 마나 평소 저런 방식으로 호감을 얻어왔을 것이다. 그러고는 썸 타다가 마음에 들면 어느 순간 우위에 관심 없는 태도를 취하며 관계를 끊었는데, 이번엔 얼핏 자신이 그 반대 입장이 된 거 같으니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거다. 자신한테 대시하던 남자들을 얼마나 우습게 여겼으면. 결코 나를 좋아한 것도 아니고 단지 자신의 위치의 문제이다.

 

정기공연 연습이 진행되면서 팀장은 계속해서 안무 수정 사항을 주문했다.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공지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앞사람에게 말해서 알아서 전달되길 바라는 식이었다. 반영되지 않으면 연습 도중 "뇌에 힘줘", "그것도 ?" 같은 말을 했다. 처음엔 모두가 팀장의 말을 따르려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듣는 마는 했다.

 

정기공연 마지막 연습이 끝나고, 팀장이 차분한 말투로 "혹시 하고 싶은 있으면 하고 가자"라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불만을 듣고, 미안하다고 하는 그림을 생각했던 같다. 하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그냥 끝나는 듯하자 팀장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울지 ~" 하며 팀장을 달래는 애들도 있었지만, 나는 도저히 상황이 납득되지 않았다. 어떤 말도 없이 단지 눈물을 보이는 대체 무슨 연유인가?

 

정기공연이 끝나고 단체 사진을 찍은 직후, 팀장이 떠나려던 나를 불렀다. 타이밍과 분위기 때문에, ‘야!’라고 소리친 것에 대해 사과하려는 알았다. 'OO 수고했습니다.'라고 말해서 ''라고 대답하고 (말을 놓지 않았었다)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팀장은 ''ㅇㅇ님 수고했죠~? 수고했죠~~?' 라고 말했다. 직접 말로 사과하긴 싫으니, 눈치껏 알아서 알아먹으라는 뜻이다. 질린듯이 '네에에~ 네에에' 대답하고 떠났다. 자기가 나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니 저런 행동이 나오는 거다.

 

후로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8개월 후 2학기 동아리 신입생들이 들어오고 힙합 장르끼리 가벼운 댄스 배틀을 팀장이 심판을 맡게 되었다. 나는 흑발의 신입생 여자애와 같은 팀이 되어 같이 연습했지만 본선 1차에서 탈락했다.

 

배틀이 끝난 , 팀장은 특별상을 사람을 찾다가 다른 흑발 신입생에게 다가가 뭔가를 물었다. 그러나 애가 " 본선 진출 했는데요?"라고 답하자, 팀장은 순간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신입생들 얼굴이 아직 익숙치 않아서~"라고 얼버무렸지만, 착각할 없었다. 원래 상을 주려던 금발로 염색한 다른 신입생이었다.

 

나와 함께 연습한 애가 나에게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자 애를 멕이려 하다가, 비슷한 사람을 착각했다. 특별상을 일부러 다른 사람을 선택하는 행동도 이번이 번째였다. 장난처럼 보이지만, 상대가 얼핏 기대하는 표정을 즐기는 것이 틀림없다.

 

어우. 으으으으으으..!

 

분명 이런 애들이 나중에 성격 이상한 여자 상사가 된다. 결코 지인으로도 엮이고 싶지 않은 성격이다.

 

코로나 거리두기가 끝나고 동아리 활동이 재개된 첫 학기, 캠퍼스는 다시 활기와 생동감으로 가득 찼다. 교정 곳곳에는 신입생을 모집하는 동아리 부스가 늘어섰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와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스트릿 댄스 동아리 DT(댄스타임) 가입했다. 대학원생도 입부할 있었고, 하루를 마친 생각 없이 쉬러갈 공간이 있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에 공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매번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회성 모임보다는 꾸준히 이어지는 학교 동아리 활동 낫다고 생각했다.

 

동아리에 들어가면 힙합, 왁킹, 락킹, 비보이, 코레오, 하우스, 크럼프 등의 장르 하나를 선택해 같은 장르의 사람들과 2 동안 활동하게 된다. 내가 선택한 장르는 힙합이었고, 신입은 23, 그중 남자는 7 정도였다. 대부분 20 초중반이었으며,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학기는 이벤트 없이 지나갔다. 신입생들은 공연에 참여하지 않고, 선배들이 돌아가며 가르쳐 주는 기초 안무를 배웠다. 자연스럽게 친해질 기회가 맍지 많아 동아리 시간이 끝나면 대부분 각자 흩어졌다. 본격적으로 활동하기보다는 선배들을 보며 아리 분위기를 체험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 시험 기간마다 3 정도 휴강이 있었고, 사실상 2개월 정도의 활동이 전부였다. 어느덧 기말고사를 앞두고 학기가 끝나갔다.

 

동아리 입부 면접 당시, 내가 속한 장르 팀장(20 중반의 여학생) 눈이 마주쳐, 서로 호감이 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얘들이 조금 늦어도 내색없이 넘어가 성격이 성격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활동하는 동안 특별히 친해질 계기는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학기 마지막 , 7 정도 모여 짧은 뒷풀이를 가지게 되었을 연애 이야기가 나오며 팀장은 "이제는 연애를 하고 싶다" 말며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얼마 다시 뒤풀이를 , 팀장은 '이제는 연애를 하고 싶다' 말을 다시 했다. 이번엔 나를 쳐다보지 않았지만, 나를 염두에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서로에게 호감이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이야기를 듣는 와중 성격이 맞지 않을 같아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이후 다시 마주쳤을 때는 서로 관심이 완전히 사라진 듯했다. 팀장 입장에서는 "관심 있었으면 대시해야지, 그러기는 커녕 술자리에서 아무 말도 안하고 앉아 있기만 해서 별로"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얼마 , 여름방학 동아리 활동을 하며 내게 호감을 보이는 듯한 다른 사람이 생겼다.. 행동 없이 나를 조용히 바라보아 차분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실제 성격은 말은 적지만 발랄한 편이었다.

 

팀장도 이러한 기류를 눈치챘는지, 애에게 짧게 한마디를 건넸다. 때문에 주변 사람들도 나와 사이의 분위기를 인식한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없었고, 오히려 연습할 서로 가까운 자리에 위치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제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말을 걸려는 순간, 애는 갑자기 몸을 돌려 피했다. 당황하지 않고 (당황하면 지는거다) 그대로 지나가 공간에서 혼자 안무 연습을 했다. 애는 다소 당황한 보였고, 이후 서로 쳐다보는 행동은 사라졌다.

 

이렇게 끝내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해 네다섯명 모여 즉흥 안무를 만드는 활동을 애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했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완전히 무시하고 등을 돌렸다. 음부터 나에게 관심이 없었구나 꺠달았다.

 

다시간이 지나고, 학교 축제 공연 연습을 하며, 성격이 둥글둥글하고 엉뚱한 주하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이성적 호감이 바탕이 교류라고 생각했으나 언뜻 보이는 행동에서 남자친구가 있는 같은 생각이 들어 점차 거리를 두었다. 얼마 여자들끼리 나눈 대화에서 "? 남자친구 있었어?"라는 말이 나오는 듣고 생각이 맞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래도 주하와 마디 하며 지냈다.

 

다른 명과 자주 연습 자리가 겹쳤다. 이틀 연속 같은 자리에서 연습하다, 삼일째도 가까운 위치에서 연습하게 되자, 애는 갑자기 자리를 피했다.

 

그러던 , 남자 동아리원 두세 명이 나에게 불만을 가진 듯했다. 그중 명은 모일 때가 되었는데도 내가 혼자 떨어져 있자, "OO!" 하고 일부러 소리로 불렀다. 직후 "아차 싶었다" 표정을 짓는 보니, 나에 대한 불만이 있었지만 선을 넘지는 않으려는 듯했다.

 

그러나 얼마 , 동아리 전체 뒷풀이에서 우리 장르에서 나만 참석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날 생일인 사람이 있어 힙합 장르 사람들끼리 따로 뒷풀이를 했는데, 나만 사실을 전달받지 못한 것이다. 모두의 의견이라기보다는, 이를 주최한 애들이 일부러 나에게만 알리지 않은 것 같았다.

 

동아리 활동을 하는 동안 직접적으로 대시한 한명도 없었고, 애들 모두 내게 이성적인 호감이 없었다는 확인한 뿐이다. 물론 개인적인 연락을 사람도 명도 없었다. 하지만 얘들은 서너 명이랑 탔다고 하려나? 

 

비단 여기서만일이 아니었다. 나보다 심하면 심할거면서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다.

 

# 모임 불미

 

25 , 케이팝 댄스 클래스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말없이 사람들을 따라다니기만 해서 로봇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가끔 여자애들이 나를 챙겨주었다. 그런데 여자 아이돌 담당 안무가라는 남자 강사 분은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어느 " 안무는 참석 인원 9명이지만 4명씩 해야 한다" 의도적으로 나를 제외시켜 한동안 멍하니 있게 했다. 줄지어 걷는 간단한 안무였기 때문에 4명씩 나눌 필요는 없었고, 당연히 강사 본인도 사실을 알고 있었다.

 

26 때는 6 정도 모여 연극을 올리는 모임에 참여했다. 그런데 둘째 날부터 남자 명이 감독 역할을 맡으며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려 했고, 여러 이유를 대며 파트를 계속 빼는 것이었다. 그날 톡방을 나갔고, 그걸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도 나갔는지, 시간 정도 지나자 애에게서 불만을 담은 장문의 글이 왔다. 내용은 "형이 앞으로 인생 살면서 여러 힘든 일이 있을 텐데, 고작 이런 일로 그만두면 앞으로 어떤 인생의 힘든 일도 이겨낼 없을 "이라는 식의 내용이었다.

 

27 때는 사교 댄스 동아리에서 강사가 따로 여는 살사 수업을 듣는 사람들끼리 구성된 공연 팀에 들어가는 반대당한 적이 있다. 강사는 실력을 문제 삼았지만, 나와 비슷하거나 못하는 사람도 합격한 것을 보고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심각하게 전문적인 팀도 아니었다.

 

같은 해에 들어간 대형 독서 모임에서는 모임장이 갑자기 나를 불러 "운영진의 결정"이라며 내가 동아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으니 나가달라고 했다. 나는 3 동안 서너 번의 활동 뒷풀이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고 조용히 활동 내용에만 집중했기에, 상황이 너무에 뜬금없었다. 말다툼 끝에 운영진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실상 모임장 혼자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는 알았다. 그러러면 회비를 돌려달라고 요구하고 단톡방에 내용을 알리고 나갔는데, 숨김 처리 기능 때문에 효과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소심하게만 있었던 때도, 이성과 관련된 일이 전혀 없었던 때도,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이 의문이었다. 원래 모임을 하다 보면 자주 이런 일이 있는 건가? 모임장이나 회장, 강사 같은 뭔가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유독 나에게 직접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성격을 미리 짐작하거나, 자신이 리더인 만큼 모든 호감과 관심이 자신에게 쏟아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모임과 연애

 

한편, 사교 댄스 동아리에서의 경험 이후 이성 관계에서 비언어적 표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내성적인 편이라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과 자주 시선이 마주치고, 가까이 가도 피하지 않으며 여전히 시선이 교류된다면 대화를 시작할 있다고 느꼈다. 이후 친해지며 장난스럽게 이성적 호감을 표현해도 거부감이 없다면, 그때 연락처를 물어봐도 된다고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서로 호감이 있다면, 크게 티가 나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서로 옆자리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 그렇게 되도록 미묘하게 움직여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반대로 이성적 호감이 없으면 상대가 피하거나 거리를 두며 과정에서 끝났다.

 

하지만 그렇게 했어도 대부분 연락하는 과정에서 읽씹으로 끝났다. 사람이랑은 정말 연애로 이어질 같다고 생각했어도 매번 틀리는 , 적어도 둘이 따로 만나고 나서야칫국을 마셔야 된다고 생각했다. 연애는 어쩔 없이 현실적 조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동아리가 연애만 하는 곳은 아니고, 연애를 못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그냥 친하게만 지내거나 모임 내용을 하고 돌아오면 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자신이 좋아하거나 진지하게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는 모임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대시하고 되면 바로 나가는 같은 남자들이나, 어떤 남자들도 자기한테 이성적 호감이 없으면 나가는 같은 여자들은 별로였다. 나와 맞는 사람을 찾으면 좋고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활동만 즐기며 와야 된다고 생각했다.


모임에
 참여한 목적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지만, 억지로 친해질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친해지면 친해지는 것이고,  친해지면 어쩔  없이 직장처럼 활동 내용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게 호감 없는 사람과 억지로 친해지려 해봤자,  같이 있는 자리에서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는 등의 행동을 한다. 게다가 어쩔  없이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친해지게 된다는 것도 느꼈다.

 

동아리가 분리된 후 정기 연습 장소가 다른 라틴바로 변경되었고, 학생들이 직접 수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후 인원은 더욱 줄어들었지만, 수업은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개편 번째 기수에서는 졸업생을 대상으로 개의 클래스가 개설되었다. 번째는 심화 클래스, 번째는 공연을 준비하는 클래스였다. 클래스 모두 이글 님이 담당했다. 6 과정으로 구성된 클래스 수업비는 각각 5 원이었으며, 클래스를 모두 수강하면 일부 수업비를 환급해 준다고 했다.

 

나는 계속 동아리 활동을 이어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사교 댄스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큼 크지 않았고, 동아리 인간관계도 거의 고정되어 있었다. 신규 회원 유입도 많이 줄었다. 그래도 이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동아리 활동을 마무리하자는 마음으로 클래스를 신청했다.

 

수업이 진행된 지 약 3주쯤 되었을 때, 이글 님이 공연 희망자를 모집했다. 공연은 홍대와 강남의 라틴바에서 3~5회 정도 예정되어 있다고 하며, 참가 희망 여부와 각자 선호하는 파트너를 조사했다. 다만, 모든 신청자가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걸렸다. 나는 홍대 공연만 신청했다.

 

그러나 얼마 발표된 공연 파트너 배정 명단에서 나는 빠져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이글 님과 친하지는 않았지만 관계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자기 공연을 한쪽만 한다고 해서 나를 제외했나?

 

마침 같이 수업을 듣던 워터 님이 문자를 보내왔다. 자신도 공연을 신청했는데 명단에서 빠진 같다고 했다. 나는 단톡방에서 이글 님에게 공연 신청을 했는데도 나와 워터 님이 제외된 이유를 설명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글 님은 갑자기 "나는 잘못한 없냐" 톡을 올렸다. 분명 여자들한테 무분별하게 연락했을 거라는 짐작으로 하나 걸리라고 찔러보는 거다.

 

'. 잘못한 없는데요.'

 

웬만하면 갠톡을 거의 했기에 딱히 찔리는 일도 없었고, 애초에 이후에 제대로 썸도 없었다.

 

그러자 이글 님은 "그렇죠… OO님은 잘못한 없죠…" 답했다. 이어서 다음과 같은 톡을 보냈다.

 

' 이유를 공지방에서 말할까요 아니면 OO님에게 개인 톡으로 보낼까요?'

'개인 톡으로 보내도 되고, 딱히 여기에 말해도 상관 없습니다.'

'개인 톡으로 보내달라는 말이죠?'

 

잠시 생각하다 '' 라고 답했다.

 

이글 님은 내가 공연 멤버로 선정되지 않은 이유는 실력 부족과 여성들의 선호 때문이라고 했다. 워터 님은이글 님으로부터 " 늦게 신청해서 제외되었다"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수업에서 이글 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었다. 공연이 예정된 라틴바에서 공연 인원을 7쌍으로 제한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연 클래스에는 남녀 8쌍이 있었기에, 커플은 빠질 수밖에 없었다. 성격이 내성적이어 빠져도 아무 못할 같은 사람들을 골랐다고 생각했다.

몇 커플 씩 돌아가며 공연을 서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이글 님은 침울한 표정으로 아직 정해진 공연은 이것 하나 밖에 없다고 답했다. 3-5 공연은 아직 계획일 뿐이었. 알겠다고, 내가 빠지겠다고 했다. 어차피 댄클 이번 달까지만 생각이었다. 사교 댄스도 이제 그만 두고, 다음 달부터는 알바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 후 어쩐 일인지 워터 님은 다시 공연 멤버에 포함되었고, 대신 공연 신청을 기한 지나서 했다는 다른 여자분이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여자 분은 자신이 기한 내에 신청했다며 불만을 제기했고, 이후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얼마 공연 일정이 잡혔다며 하겠냐는 제의에 그렇다고 답했지만 결국 공연은 취소되었다.

 

이런 일이 있고 수업 5주차 공연 클래스, 남자 명이 남아 돌았고, 파트너도 없었다. 내가 수업에 있는 방해되는 명확했다. 안무 진도는 이미 나갔고, 수업 내용은 공연을 위한 디테일 조정이었다. 5분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다가 조용히 연습실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던 와중 수업을 같이 듣던 사람에게 전화가 왔었다. 이글 님이 나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화가 알아챈 이미 20분이 지난 여서, 오늘을 그냥 돌아간다고 했다.

 

수업 6 차는 리허설이었다. 다른 레벨 수업을 기웃거리다 헬퍼로 들어갔다. 그렇게 이번 기수 수업이 끝났다.

 

이글 님은 환급 대상자는 자신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하라고 공지했다. 나는 환급 대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글 님은 "심화 클래스와 공연 클래스 모두 전체 출석해야 환급 대상"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연을 희망했음에도 배제되었고, 이후 공연 클래스 수업은 사실상 리허설로 진행되었으며, 방해될 같아 헬퍼로 참여했으니 실질적으로는 전체 출석이나 다름없지 않냐는 불만을 제기했다.

 

그러자 이글 님은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공연이 번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영상도 찍을 예정이었는데, 끝까지 열심히 하지 않고 중간에 수업을 나간 건 내 잘못이고 애초에 실력 부족이라는 (나는 납득하지 않았지만) 내용이었다.

 

짜증났다. 다음 달에도 자신의 수업을 계속 들으란 소린가? 게다가 이미 동아리 수준을 넘는 금액인 10 원을 받았으면서, 수업을 이렇게 운영하는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공연 못할 사람이 있었으면, 애초에 공연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뭔가를 배울 있도록 커리큘럼을 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완벽주의 성향에, 잘못을 넘어가주면 내가 잘못한 거고 자신은 완벽해야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동아리가 분리되고 뭔가를 성공시켜야 하는 입장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운영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동아리 내에서 친한 사람도 적었고, 이글 님은 운영진의 핵심 인물이었다. 운영진은 분리된 얼마 되지 않아 갈등을 원치 않을 것이었다. 문제를 제기하려면 단톡방에서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려야 했지만, 대부분의 회원들은 그저 조용히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냥 동아리를 나왔다.

 

그렇게 1 다닌 댄클 생활을 마무리 했다. 지금 생각하니 2 피해자가 생길수도 있으니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나올 후회된다.

댄클은 로얄 선생님이 대표인, 성인들에게 살사와 바차타를 가르치는 동호회 학원인 'LL 클럽'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곳을 다니던 로사 님이 대학생들도 이런 활동을 즐길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동아리 틀을 만들고, LL클럽의 선생님들을 모셔와 지금의 댄클 동아리가 탄생했다고 한다.

 

어느날 장문의 글이 동아리 공지방에 올라왔다. 글의 내용은 댄클 회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관비가 로얄 개인 계좌를 통해 이체되며 어떤한 증빙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시스템 상에서는 LL클럽 운영 내역과 댄클 운영 내역을 구분할 없고, 설령 로얄 쌤이 동아리비를 횡령했어도 결코 모른다는 얘기였다.

 

증빙 서명과 녹취된 발언이 있다며 사진이 첨부되어 올라왔다. 증빙 서면은 '댄클 대관비는 로얄 계좌에서 이체된다' 적혀 있는 종이를 동아리 장소로 대관하던 라틴바의 사장님이 사인해 종이 같았다.

 

이는 동아리 전체 문제로 확산되었다. 만약 사실이라면 문제라며, 선생님께 “그동안 동아리비 사용 내역을 확인할 있는 자료를 보내 달라”는 의견들이 잇따랐다. 이에 로얄 쌤은 정기 연습 시간에 직접 설명하겠다고 답했다.

 

정기 연습 중간 휴식 시간에 해명 자리가 마련되었다. 라틴바 사장님이 해명을 위해 댄클을 직접 방문했다. 처음 단톡방에서 의문을 제기한 '울프', 살사와 바차타에 열정이 있던 '이글' 주축으로 학생측의 의견이 전달되었다. 해명은 소리 높이는 없이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증빙 서면을 라틴바 사장님은 평소 로얄 선생님과 친분이 있었으며, 로얄 선생님이 '젊은 애들이 살사와 바차타를 열심히 하는 보는 뿌듯하다, 그래서 적자를 봐도 아무런 느낌이 든다' 말하곤 했다고 한다. 어느날 댄 학생이 그냥 평소 대화하는 말로 묻기에 아무 생각 없이 서면에 사인해 주었는데, 그걸 횡령으로 몰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말했다.

 

의문을 제기한 학생측은 '물론 로얄 쌤께 고마워하는 마음은 있지만, 우리가 문제 삼는 대관비 동아리 운영 내역에 관한 자료가 투명해지는 것이고, 그래야 앞으로도 비슷한 일이 있었을 우리도 납득할 같다' 말했다.

 

하지만 댄클 운영에 쓰이는 별도의 계좌가 없었다. 투명화 요구에 맞춰 내역을 전부 공개하려면, 로얄 생업인 LL클럽 운영과 강습을 포함한 개인 수입까지 들여다봐야 하는 상황이라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로얄 설명이었다.

 

그러자 학생들이 “회비 가장 부분이 대관비인데, 라틴바 사장님이 우리가 매달 대관비로 얼마나 쓰는지 영수증만 발급해 주면 되는 아니냐”고 물자, 사장님은 “대관비는 동호회나 동아리 인원 수와 소셜 참여 정도에 따라 차등을 두고 있으며, 로얄 쌤과는 개인적 친분으로 할인해 주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금액을 공개하기 곤란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댄클은 인원도 적고 소셜 참여도 역시 많지 않은 "이라고 덧붙였다.

 

그럼 우리가 얼마 정도를 로얄 쌤에게 빚진거냐는 이글의 질문에, 로얄 쌤은 머뭇거리다 300만원이라고 답했다. 증명할 없었지만, 말에서 진심을 느낀 이들도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인원에 비해 공간인 라틴바를 계속해서 대관해서 생긴 문제지, 근래 크게 감소한 인원에 맞게 연습실을 잡았다면 정도의 적자가 쌓일 일이 없다는 것도 일리가 있는 같았다. 모임 장소가 매번 바뀌고, 그날 참석하는 인원을 미리 파악하기 힘들다는 문제를 감안하면.

 

결국 동아리 운영비 투명화라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고, 이대로 LL클럽 시스템을 계속 사용할지, 아니면 아예 학생들끼리만 운영하는 식으로 분리할지를 두고 전체 투표가 이뤄졌다. 만일 동아리가 분리된다면 대관 공간부터 수업 내용까지 모든 운영을 학생 운영진이 책임져야 했다.

 

동아리 회비를 문제로 삼았지만, 처음 시작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선생님들은 수업 중에 가끔 몇몇 애들은 놀리는 같은 가벼운 장난을 치곤 했다. 개인적으로는 젊었을 또래 이성과 사교 댄스를 즐기지 못했던 아쉬움 같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고 생각했다. 수업의 모든 사람들은 가벼운 장난으로 생각하고 넘기나, 대상이 본인은 마냥 웃어넘길 만은 없곤 하다.

 

이에 대해 뭐라 해봤자 자신만 예민한 사람으로 보일 뿐이어, 분노를 표출할 있는 정당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행동을 취할 이유가 없었다. 기존 운영진의 말처럼, 내용을 공지방에 올리는 아니라 자기들에게 먼저 알렸으면 됐다. 유독 울프에게 그런 일이 많았는지, 아니면 아닌 걸 크게 받아들였는지는 결코 모르지만 말이다.

 

투표를 진행하던 대다수는 '동아리 회비 내역은 투명하게 공개하는 민주주의적이다' 생각으로 투표에 참여했을 같았다. 동아리 활동에 꾸준히 나오는 사람도 정도였다. 장기적으로는 학생들이 이러한 동아리를 유지할 유인이 없다는 것과, 이번에는 학생쪽을 믿을 밖에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런 일이 있은 직후면 회비 문제는 없을 같았지만.

 

나는 중립이었다. 진심으로 로얄 쌤이 동아리비를 횡령했다고도, 앞으로 그런 문제가 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내게 문제라면 선생님이 있는 클래스에선 어쩔 없이 다소 선생님 눈치를 보게 되는 불편한가, 아니면 선생님들이란 억지력이 없을 각자 자기 맘대로 행동하게 될까 하는 쪽이었다. 로 선생님께 불만은 없었지만 다른 선생님에게는 섭섭함이 조금 있었다. 친한 쪽도 없었고, 딱히 동아리 활동만 있다면 어느 쪽이든 상관 없었다.

 

투표 결과 LL클럽과 댄클 동아리 분리가 결정되었고, 이내 동아리 회장 선거가 이뤄졌다. 처음 공지방에 문제를 제기했던 울프가 동아리의 회장이 되었다.

댄클 동기에 지예라는 얘가 있었다. 밝고 쾌활한 성격이라 주변 공기를 잘 띄워 주었고, 나나 다른 남자들이랑 파트너가 되어 대화 끊기게 되면 상대의 장점을 찾아 칭찬해 주곤 했다.

 

지예는 나와 파트너가 될 때면 언제나 활짝 웃는 얼굴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처음엔 원래 성격이라서 그런 알았는데, 유독 내게 다가와 자주 말을 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지예와 파트너가 되었을 때 주변을 두리번 거리자, 당황했지만 이내 말을 걸어 관심을 되돌리려는 게, 엄마 같은 면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예는 동아리 처음 들어왔을 때도, 댄클 휴강 기간이 끝난 후에도, 유독 나에게 호의적인 감정을 가진 것 같았다. 만약 지예와 사귀게 되면 안정적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점차 나도 먼저 지예에게 말을 걸게 되었다.

 

얼마 후, 지예가 코로나에 걸려 한동안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지예에게 카톡을 보냈다.

 

'코로나 때문에 심심해서 어떡해?'

'난 안 심심한데 ㅋㅋㅋ'

'댄클에 안 오는데?'

'코로나인데 어떻게 가?'

'그래서 심심하지 않냐고 ㅋㅋㅋ 뭐하고 보내?'

 

뒤로 답이 없었다. 성급히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했다. 보내고 나니 카톡을 왜 저런 식으로 보냈지 생각했다. 거기다 다소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 주 지예가 댄클에 돌아왔을 때는 내게 뭔가 미안한 표정인 거 같았다. 몸 괜찮냐는 말을 걸자 밝게 대답했고 이전처럼 다정하게 몇 마디 주고받는 사이로 돌아갔다.

 

어느덧 기수가 시작되고 4주째가 되고, 레벨 2 공연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제 지예와 따로 만날 약속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말을 워낙 잘 해 위화감이 없었지만, 지예는 중국인 유학생이었다. 소셜 휴식 시간, 지예와 같은 의자에 앉아 쉬게 되었을 때, 교양수업에서 들은 중국어를 짜 맞춰 '우리 같이 밥 먹자'는 말을 중국어로 했다. '우리 나중에 밥 한 끼 하자' 같은 세세한 뉘앙스를 전하는 건 불가능했고, 중의적인 의미가 있어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내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왜 그래야 돼?"

 

그 말을 하고 지예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틀 뒤 레벨 2 공연 연습하는 내내, 지예는 나한테 하던 행동을 다른 동기 남자애게 했다. 연습 내내 그 동기 남자 옆에서 말을 걸며,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내가 거는 말에는 대충 대답해 대화를 끝냈다.

 

지예가 카톡을 읽고도 답을 안 했는데도 여전히 내가 말을 걸고, 사실상 고백 비슷한 것도 했으니, 이제 그렇게 하면 내가 비통해 하며 '너 지금까지 나 좋아헀잖아' 하고 매달릴 거라고 생각했겠지. 실제 그러는 얘들도 있었다. 처음 파트너 남자에게 칭찬을 해 주던 것도, 그런 식으로 호감을 얻으려 했던 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지금까지 동아리 활동을 하는 동안, 지예가 제일 나에게 말을 많이 걸었 었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말을 건 경우도 적었고, 다른 동기들이 내게 취하는 스탠스는 뭔가 애매한 느낌이 들었다. 안따까운 듯한 눈치도 있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연습에만 집중했다. 레벨 2 공연은 무사히 마쳤고 레벨 3로 올라가게 되었다. 

 

댄클에는 남자친구가 있는, 키도 크고 몸매도 좋은 예쁜 댄클 졸업생이 있었다. 새 기수가 시작되고 레벨 3로 올라가지 수업에 헬퍼로 들어오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이 떠 올랐다. 연습을 위해 파트너를 찾아야 할 때면 제일 먼저 이 사람에게 달려갔고, 지예는 안 쳐다보고 이 사람만 쳐다봤다.

 

그 사람이 남자친구가 있던지, 내가 사람에게 호감이 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목적은 오직 지예 기분 안 좋게 하는 것. 이런 게 도움될까 싶었지만, 호감 자체가 목적이면 유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너보다 이 사람이 더 예뻐',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그리고 꽤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지예는 당황했고,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 보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바람에 발을 삐었는지 남은 클래스 시간 동안은 휴게실에서 쉬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다소 당황했다. 지예가 이렇게까지 큰 반응을 보일거란 예상은 못 했다. 지금 이 상황만 봐서는 일방적으로 내가 잘못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그날 수업이 끝나고 나면 지예가 내 뒷담화를 심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후 아무 일 없었고, 댄클에 8개월 더 다닐 동안 지예와 마주칠 때 인사하고 별일없이 지낸 거 보면 지예가 성격 좋은 건 맞는 거 같았다. 단지 내가 이성적 대상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지예와 잘 안 됐어도 납득이 되는 게, 초반 지예가 아닌 슈가에게 관심이 있던 건 사실이었다. 그래서 지예가 저런 행동 한 것이 아닐까. 나는 사귀게 된다면 정말로 진지하게 사귈 생각이었다. 믿거나 말거나.

 

그러고 나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다른 얘들이라고 안 그럴까. 1년 동안 스무 커플이나 생겼다고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중 절반 이상이 한 달 내에 깨졌다고 들었다. 이미 사귀고 있는 커플들도 내가 생각하는 진지한 관계가 아닐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면서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랐다. 보통 연애하고 아무리 늦어도 3개월 사귀게 되면 관계를 맺게 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좋아하니까 사귀었을 테니까. 이게 현대 연애의 새로운 균형이었던 것이다. 아니면 예전부터 그랬던 건가?

 

그 후 댄클에서의 내 생활은 이랬다. ‘나도 더 이상 거리낄 게 뭐 있어싶어서, 내가 조금이라도 호감이 생기는 사람 모두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이전과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전까지 내성적인 탓에, 정말 관심 있는 이성에게만 억지로 먼저 다가갔다면, 이제는 모두에게 먼저 말을 걸고 친해지려 했다. 남녀 불구하고 상대를 칭찬하고 호감을 얻으려는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같이 수업을 듣던 몇몇 남자애들이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게 되었다. 말을 걸어도 제대로 답해주지 않거나,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딴지를 걸었다. 우리 기수 레벨 3 공연을 마치고 다른 사람들을 모아 뒷풀이를 한 것 같은데, 나만 빠진 거 같았다. 오해였다고 하는데

몇몇 여자애들도 마찬가지였다. 별일도 없었는데 소셜 때 파트너 신청을 거절했다.

얼마 후 이번에는 우리 기수끼리 다같이 뒷풀이 하자고 파티룸을 잡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다같이 뭉치는 느낌도 아니여서 분위기가 애매했던 걸로 기억한다.

 

한편 지예가 했던 말은 남녀관계의 핵심을 뚫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지예뿐 아니라 대부분 여자들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생략된 말의 전체 버전은 다음과 같지 않을까.

"너랑 사귀지 않으면 게속해서 남자들의 대시와 호의를 받을텐데, 내가 왜 굳이 너와 사귀어야 돼?"

 

그간 모임 경험으로 사회성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연애였다. 사교 댄스 동아리인 만큼, 동아리가 생긴 후 1년 동안 공식적으로 생긴 커플만 해도 스무 쌍이나 된다고 한다.

 

그간 이성관계에 대해 깨달은 건 다음과 같았다. 같은 단톡방에 있다고 무턱대고 문자를 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오프라인에서 마주칠 있는데, 카톡으로 먼저 친해진다는 생각은 잘못됐다. 순서가 반대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크게 이어질 일도 없이 읽씹으로 끊겨버리기 쉽다.

충분히 친해진 거 같아도 어느 문득 연락이 끊길 있다. 이미 연락하고 있는 사람이 넘쳐나 그럴거라 짐작했다. 내가 재밌는 편도 아니었고, 딱히 사귈 것도 아니니 카톡만 이어가는 의미 없다고 느꼈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어차피 새로운 가면 대시하는 사람은 계속 생길 테니.

 

게다가 남자들한테 호감을 받은 자랑으로 여기는 여자들도 있는 같았다. 대시하는 남자이기에 이런 사람들은 드러나지도 않는다. 보낸 메시지는 틀리면 무기가 된다. 여자들의 정복욕을 믿었다. 댄클에서 또래 친구가 '남자들은 총알이 밖에 없는 같아'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리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아직 충분히 친해지지도 않았는데 카톡으로든 번따로든 대시하면 안 된다 생각했다. 모두가 보는데서 행동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히 관계의 진전을 인식시켜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게 유일한 진실이다. 개연성이 가장 중요하다.

 

잘생기고 인기 있는 유투버가 얼핏 호감 있는 사람과 라이브 방송에서 친해지려 하는 걸 보고, '나라면 사적 자리 공적 자리 완전히 구분하고 공개된 데에서 저렇게 안 할 텐데' 의문이 들다가 깨닫게 된 것이었다.

같이 지내면서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하는지, 이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지 파악하고, 주변 사람들도 납득할 정도 서로 호감이 쌓였을 때 대시하는 것. 그게 기본 방침이었다. 애초에, 원래 관계라는 건 그렇게 자연스럽게 발전해 나가는 것이었다.

 

댄클 수업 첫날, 강사님을 안에 두고 둘러선 로테이션으로 파트너를 바꿔가며 연습할 , 처음 슈가를 보았다. 같이 동작을 맞춰야 하는데 어쩐 일인지 슈가는 양손을 내려놓고 가만히 서서 나를 지켜보기만 했다.

 

‘뭐지? 내가 잘못했나? 그런데 오늘 처음 보는데…?

 

당황해서 나도 가만히 있다가 시간이 흘러 파트너가 바뀌었다. 의문이 들어 수업을 하는 동안 슈가를 살펴보니, 슈가는 다른 남자들에게도 똑같이 양손을 내려놓은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당연히 남자들은 당황했다.

 

'...애 봐라'

다시 슈가와 파트너가 됐을 , 이번엔 나도 차렷 자세로 그냥 서 있었다. 그러자 슈가가 슬쩍 손을 내밀었고, 나는 연습하자는 뜻인가 싶어 홀딩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슈가는 다시 손을 서서히 내리는 것이었다. 내리려던 손을 그냥 잡아챘다. 혹시 강사님이 보고 문제가 되면 '"얘가 수업시간인데 손을 안 잡으려 하자나요. 남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일러야지 대비책이 있어서 가능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슈가는 손을 빼려 하지 않았고, 그대로 같이 동작을 연습했다. 그 뒤로도 슈가는 나와 파트너가 될 떄면 순수히 손을 내주었다. 여전히 슈가가 파트너가 되면 당황하는 남자애들이 있었만. 슈가와 손을 잡는 다른 얘들은 "연습 시간인데 연습 안 할 건가요" 식으로 정중하게 말했나? 그렇게 생각하면 그게 좋은 방법인 같았다.

 

그런데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게, 슈가의 눈빛에 악의가 없었다. 뭔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이 쳐다보는 게 상대의 반응을 보고 장난 치는 것 같기도 했다. 남녀 상관 없이 동기 모두에게 말을 걸고 성격도 순한 편이라는 게 느껴져, 같은 동기 남자들 대다수가 슈가를 좋아할 정도로 호감이 몰렸었다.

 

나도 슈가에게 호감이 있었다. 다른 사람과 파트너가 되었을 가끔 슈가가 나를 슬쩍 쳐다보는 보면, 슈가도 내게 작은 호감이 있다고 생각헀다. 내향적인 성격이라 슈가에게 다가가 지속적으로 말을 걸고 대화를 유도하지 못하는 아쉬웠지만, 내가 있는 것들을 했다.

아리 뒤풀이에서 메뉴 정할 “탕수육 먹고 싶은 사람―깐풍기 먹고 싶은 사람―” 이렇게 투표하던 와중에, 슈가가 “꿔바로우 먹고 싶은 사람은 없어?”라고 말하자 아무도 손을 들지 않길래, 내가 뒤늦게 손을 번쩍 들며 “사실 나도 꿔바로우가 먹고 싶어.”라고 말했다.

슈가와 파트너가 어느 , 잡은 손을 상대 머리 위로 넘기는 '깔리시아'라는 동작을 연습할 , 슈가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 것처럼 동작을 하다가 슈가 손을 그대로 머리 위에 올려 놓았다.

그때마다 웃는 거 보면 나름 효과가 있었던 같다. 니면 내성적인 사람이 가끔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웃겼을 수도 있다. 그러면서 종종 파트너가 아닐 때도 서로 쳐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슈가는 적어도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 중에서는 내게 제일 마음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슈가에게 고백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는 됐다고 생각했다.

 

동아리를 시작한 어느덧 달이 지났다. 우리 기수의 절반 정도가 그만뒀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동작이 점점 어려워지고, 때마다 인원이 절반씩 줄어든다고 했다. 마침 대학 기말고사도 겹쳐서, 동아리는 앞으로 2주간 휴강이 예정되어 있었다. 다음 기수에는 누가 나올지 모르니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연락처를 받아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업 중 남자 동기들 연락처를 받고, 이제 슈가의 연락처를 받을 일만이 남았지만 좀처럼 타이밍을 잡지 못 했다.

 

월요일 수업이 끝나고, 소셜 시간이 시작되었다. 이제 미룰 수 없었다. 슈가는 지예라는 여자 동기 한 명과 남자 선배 한 명 셋이서 얘기하고 있었다. 타이밍이 적당해 보였다. 다가가서 말했다.

 

"ㅇㅇ도 중간에 그만두고, ㅇㅇ도 그만뒀는데, 우리도 3개월쯤 됐잖아. 다들 언제까지 동아리를 계속할지도 모르니까 연락처를 미리 교환해두자."

 

음악 소리 때문에 들렸는지 슈가가 “어? 뭐라고? 하고 되물었다. 다시 같은 내용을 말하자, 같이 있던 남자 선배는 살짝 당황하고, 지예가 흔쾌히 연락처를 주는 동안 슈가는 '나중에 카톡으로 하면 되잖아' 조용히 읊조리고는 그 자리를 떳다.

 

다시 슈가를 찾자, 옆에서 뭔가 복잡한 표정으로 있었다. 갑자기 다른 사람들 있는데서 번호 따는 것처럼 연락처를 얻으려 한 것을 탓하는 걸까? 슈가에게 다가가 사과를 했다.

 

"미안, 그만두는 사람들도 생기고 다음 달에 안 나올지도 모르니 지금 아니면 연락처를 교환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어."

"나중에 카톡으로 하면 되잖아."

슈가는 조용히 같은 말을 다시 했다.

하지만… 말문이 막혔다.

그 후 슈가는 문 밖으로 나갔고, 나도 잠시 기다리다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슈가에게 카톡을 보냈다. 내용을 고심했지만, 결국 같은 말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들도 있어서 앞으로 언제 볼지 모르니, 친해지고 싶어 연락처를 받고 싶았다. 괜찮으면 내일 먹자"라는 내용이었다.

 

슈가는 “내일은 그렇고, 3 후에 보자”라고 답했다. 나는 이것을 완벽한 거절이라 생각하고, “알았어”라는 말과 함께 “ㅠㅠ” 이모티콘을 보냈다.

 

얼마 인스타 스토리에 셋이 카페에서 공부 중인 사진이 올라온 보니, 아마 선배와도 약속을 잡았던 아니었을까 싶다. 이성적 뭔가가 있었다긴 보다 셋이 집이 근처라서 같이 시험공부 하자고 했을 거 같았다. 물론 아닐 수도 있었지만.

 

댄클 휴강 기간이 끝난 2주 후에 슈가는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그 날을 마지막으로 동아리를 그만두었다. 남은 동기들은 “슈가 갑자기 그만둔 거지?, “사람 일은 정말 모르겠다”는 얘기를 했지만, 나는 이유를 같았다. 휴강 기간 중에 말고도 슈가에게 연락한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고, 애초에 다른 곳에서 이미 되가던 상대가 있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썸이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잘 안 됐어도 납득이 되는 게 나도 슈가도 호감을 표현하는 듯 하면서도 서로 사리는 게 느껴졌다. 나도 이전 첫(짝)사랑과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서 온전히 호감을 표현하지 못 했고, 슈가도 어딘가 사리는 듯한 느낌이 었다. 나름 감춘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느낌을 잘 파악하는 편이었다.

 

나중에 한 번 동아리 소셜에 놀러왔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한 3 거리두기가 지속되었다. 이제 한계였다. 5개월 동안 스터디 카페와 헬스장만 오가 사람들과 말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밖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찾다가 유일하게 열리고 있는 동아리를 하나 발견했다. 동아리 이름은 ‘댄스 클럽’, 줄여서 '댄클'로 대학생들끼리 살사와 바차타 같은 사교 댄스를 배우는 곳이었다. 외국인도 모집하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된다고 하니, 외국어를 배우고 싶은 사람도 환영이라고 있었다. 무료는 아니었고, 대관비 등을 위해 달 4만 원 정도의 회비가 있었다.

 

유일하게 여는 곳이었지만, 사교 댄스 동아리라는 걱정되었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다같이 어울리는 분위기가 아니라 모두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할거야' 하는 분위기면 소외되는 편이었다. 인원 7 성비 6 1 정도로 몇몇 없는 여자애들에게 남자들이 대놓고 대시하는 구조이지 않을까. 여자들도 그걸 좋아하고.

 

그렇지만 이제 한계였다. 따분해서 미칠 같다. 마음에  들면 해보고 나가면 되지. 게다가 예전에 봤던 애니에서 주인공들이 왈츠를 추는모습이 강렬하게 남아, 언젠가 사교 댄스를 배워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수업을 들으러 갔더니 예상과 달리 사람들이 많았고, 남녀 성비도 반반이었다. 주기로 기수를 편성해 운영하는데, 내가 속한 기수는 14명 정도였고 성비도 비슷 보였다. 동아리 전체 인원은 40 정도일까. 가르치는 선생님 여섯 분이 계셨고, 여기서 배우다가 본격적으로 흥미가 생기면 선생님들이 운영하는 성인 대상 LL 클럽’ 수업을 이어 들을 있는 구조인 듯했다.

외국인도 대여섯 있었고, 수업은 한국어와 영어를 번갈아 가르쳤다. 모두가 닉네임을 사용했는데, 예를 들어 Nam-il, Sugar, Bred 같은 느낌으로 불렀다.

 

첫날 수업에서, 강사님이 댄스 홀에서의 기본 매너에 관해 설명했다. 댄스 홀에서 파트너와 함께 추는 춤을 소셜 댄스라 한다고 했다.

 

"When you propose a woman for dance, 안 받아들인다고 뭐라 하면 됩니다. It's just a proposal. 만약 그런데도 계속 매달리고 짜증낸다...? 그럼 E Sang Han 사람"

 

이어서 살사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이어졌다. 선생님들이 시연한 살사가 짜인 루틴인 알았는데, 즉흥적으로 거라고 해서 믿기지 않았다.

 

"When man steps backward, it's his turn to signal what move he wants the partner to do. When man steps forward, it's woman turn to do the turn."

 

남녀가 손을 잡고 번갈아 앞뒤로 스텝을 밟으면서, 남자가 박자 원하는 움직임을 하기 위해 상대 손을 가볍게 당기거나 밀며 신호를 보낸다. 여자는 신호를 감지하고, 남자가 앞으로 움직일 때의 미세한 힘을 받아 턴을 수행한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저런 안무가 가능했었다. 

들어보니 남녀가 맡아야 역할에 비대칭이 있었다. 구성을 만드는 쪽은 남자지만, 남자는 파트너를 돋보이기 위한 역할이 크고 안에서 동적으로 움직이며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여자였다.

 

"Man leads, woman follows."

 

직후 다만 ‘리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따라도 된다’는 말이 재밌게 들리면서, 묘하게 남녀관계를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커플 댄스인데 파트너는 어떻게 정해지는지 궁금했는데, 선생님들을 원으로 둘러싸고 남녀가 교대로 서서 5분 정도 연습한 뒤, 남자가 칸씩 이동해 파트너를 교체하는 ‘로테이션’ 방식이었다. "파트너 체인지!"하고 선생님이 신호를 알렸다.

중간 휴식 배운 바차타는 살사보다 정적이었고, 앞뒤 대신 손을 잡고 옆으로 움직이며, 살사보다 스킨십이 많았다. 하지만 남자의 신호에 여자가 팔로우 한다는 틀은 동일했다.

 

동아리는 진행되었다. 토요일엔 생일 축하 시상 등의 이벤트가 있는 정기연습이 열리고, 월요일엔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수가 레벨로 묶여 수업을 듣고, 레벨 2개월 과정이 끝나면 라틴바에서 공연을 올렸다. 의상 컨셉은 공연을 하는 사람들끼리 정했다.

3레벨(6개월)’을 마치면 댄클을 졸업한다. 그렇게 졸업한 사람들은 성인을 대상으로 라틴 댄스 수업을 계속 듣거나, 후배 기수의 남녀 성비가 맞지 않을 헬퍼로 들어오기도 했다.

 

1교시, 2교시를 나누어 살사와 바차타를 배우며, 끝난 네다섯 명씩 랜덤으로 나뉘어 뒤풀이가 진행되었다. 뒷풀이가 끝나고 저녁 7시에는 희망자에 한해 수업을 듣던 라틴바에 입장했는데, 이를 '소셜 간다' 표현했다. 라틴바가 동아리에게 연습 공간을 제공하고 대관비를 할인해 주는 동아리를 지원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소셜은 주말이면 7, 평일이면 월요일 수업이 끝난 직후인 9시에 열렸다. 당연히 소셜은 성인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라틴바에 오는 사람 대부분은 40대였고, 그곳에서 20대는 우리 동아리 사람들 외에는 거의 없었다.

 

동아리를 하면서, 운영진들이 동아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고, 동아리를 지속시키기 위해 여러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기로 기수가 바뀌는 것부터 시작해, 출석 일수가 부족하거나 실력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다음 레벨로 올라갈 없도록 되어 있었다.

뒷풀이는 대부분의 경우 랜덤으로 진행되어 동아리 구성원 간의 교류를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기수마다 대여섯 명씩 조가 구성되었으며 같이 사진 찍기, 소풍 가기, 조원들이랑 살사, 바차타 추기 등의 미션이 있었다. 가장 많은 미션을 달성한 조는 상을 주었다. 상은 대부분 라틴바 무료 입장권, 수업 수강 할인권, 카페 상품권 등이었다.

동아리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익명으로 신고할 있는 링크가 있었고, 다같이 모이는 시간에 선생님이 이를 공지했다. “잘 씻어라”, “파트너가 거절했는데도 계속 신청하지 마라”, “땀이 많은 사람은 여벌 옷을 준비해달라” 같은 고충이 전달되었다.

정기연습 다양한 이벤트가 있었다. 매주 '‘신선한 가을룩’, ‘크리스마스 룩’ 드레스 코드를 지정해 투표를 통해 베스트 드레서를 뽑았다. 할로윈 때는 코스튬을 입고 할로윈 파티를 열고, 크리스마스에는 랜덤 선물 교환식을 진행했다. 춤과 관련된 잭앤질 대회나 장기자랑 이벤트도 있었다.

재밌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신입 부원이 줄어들고 사람들도 빠지자 이런 이벤트들이 점점 유명무실해진 점이 아쉬웠다.

 

소셜 댄스를 계속 배우면서, 남녀 간에 요구되는 것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기본적인 운동 신경은 있다는 가정 하에 남자는 기억력 훈련이었고, 여자는 눈치 훈련이었다.

남자의 경우, 리드할 있는 동작이 다양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파트너의 손을 잡고 앞뒤로 움직이며 상대를 회전시킬 경우, 상대 손이 어디에 위치하게 되는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야 했다.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혼자 연습할 없어 더욱 어려웠다. 클래스를 듣고 연습해야지만 동작을 있었다.

반면 여자의 경우 수업을 듣지 않아도 소셜 참여하다 보면 웬만한 동작들은 있게 되었다. 남자들이 리드하는 하는 방식이 여러가지지만, 안에서 여자가 있는 동작은 한정되어 있었다. 여자의 경우 몇가지 중에어 어떤 턴이 요구되는지 알아차리는 관건이었고, 이상으로 발전하고 싶다면, 주어진 동작 안에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할 있는 스타일링을 연습하는 것이 중요했다.

 

소셜도 남자들은 나갈 이유가 적었다. 초보자여서 레퍼토리가 극히 적은 데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성분들과 춤추고 싶은 마음도 적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아는지 몇몇 여성들은 초보자인 같으면 몸을 휙돌려 거절하거나 춤추다 조금 실수해도 크게 기분 나쁜 티를 내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거울 "댄클 "에서 같은 댄클 사람들과 연습하는 시간을 보냈다. 반면 댄클 여자들은 이런 거부감을 크게 느끼지 않는지, 댄클 존과 일반 성인들이 춤추는 공간을 자유롭게 오갔다.

 

어느 날 무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자신을 지킬 줄 알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도와 주짓수는 실전성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복싱과 태권도 중에서는 발차기가 유리하지 않을까 싶어 성인 태권도 도장에 등록했다. 사실 얼굴에 주먹이 날아오는 게 두려웠을 뿐일수도 있다.

 

태권도를 배우며 몸에 힘을 빼는 중요하다는 알았다. 헬스를 오래 해서 몸에 힘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는 단점이었다. 타격의 순간에만 힘을 줘야 최대의 충격이 됐다. 품새 연습을 하며 빼는 법을 연습할 있었다. 다양한 발차기를 배운 것은 물론이다. 몸통 만을 타격 부위로 정해, 가벼운 겨루기도 경험해 있었다.

 

의외였던 , 성인 태권도에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여자 대학생들이라는 점이었다. 쉬는 시간에 둘러앉아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초등학교 시절, 학교 끝나고 태권도 학원에서 친구들을 만나던 같았다. 수업 끝난 모일 공간이 있다는 것이 편안해 보였다. 그래서 여자들이 많고 오래 다니는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게 6개월을 다니다가  그만두었다. 품새를 계속 배우는 것이 의미 있는지 의문이 들었고, 달에 번씩 심사를 봐야 다음 진도를 배울 있다는 점도 답답했다. 아쉽지만 사범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킥복싱 도장에 등록했다.

 

킥복싱장은 태권도장과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몸집이 크고 근육질인 사람들이 태권도장에선 없는 샌드백을 치고 있으니 위압감이 상당헀다. 다들 종합 격투기라도 준비하는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첫째 원투를 배우고, 둘째 바로 자진해서 스파링에 들어갔다. 스파링이 시작되자, 적어도 싸움이라는 측면에서 태권도 겨루기는 전혀 맞지 않구나 깨달았다. 태권도에선 발로만 상대를 맞추면 됐기에 거리를 두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킥복싱에선 상대가 주먹으로 얼굴을 맞추려고 계속 달려들었다. 상대가 봐준 덕에 대도 맞지 않았지만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무서운 한편 잘하고 싶다는 열망이 들었다.

 

킥복싱을 하면서 스파링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훈련의 모든 목적은 결국 스파링 잘하기 위해서이다. 태권도처럼 품새를 익히는 것도 아니니, 콤보가 즉흥적으로 나오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스파링의 재미는 유튜브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아본 , 다음번에 바로 적용해 이전에 밀렸던 상대에게 우위를 점할 있다는 점이었다.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스파링은 위험하다고 생각했지만, 대부분 서로 조절을 하므로 크게 다칠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살살 때리는 것도 무서워 때리기 직전에 힘을 빼고 얼굴을 살짝 미는 식으로 공격했다.

 

하지만... 가끔 스파링을 세게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일본에서 마른 아저씨와 가라테를 배운 학생이 있었는데, 둘은 스파링할 때면 힘을 실어 쳤다. 심지어 둘보다 내가 체격이 약간 편이었는데도 말이다. 제대로 때리지 않는 태도를 보며, 그런 상대를 압도하는 자신에 도취된 것이겠지.

 

그들이 그렇게 힘을 주어 치는데, 나도 똑같이 맞받아쳤냐 하면… 아니었다. 스파링이라 해도 서로 냉정을 유지하면서 하는데, 서로 힘을 넣어 때리다가 열이 올라 스파링을 가장한 싸움으로 번질까 두려웠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화가 나고...

기회는 다음 회기 찾아왔다. 회원들끼리 돌아가며 미트를 잡아주며 발차기를 연습할 , 둘에게만큼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힘을 실어 발차기를 찼다. 허리를 돌려 최대한 충격이 전해지도록. 힘들어하는 기색이 보였다. 아니, 원래 내가 최선을 다해 연습을 해야 했던 거지. 소소한 복수였다.

 

이후 스파링 마주친 가라테 학생은 힘을 조절했지만 (중간에 잠깐 힘이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일부러 그랬을 수도 있다), 마른 아저씨는 복수라도 하듯 미친 듯이 미들킥을 날렸다. 하지만 미들킥 가드 방법을 배운 뒤여서 막기는 쉬웠고, 글러브로 아저씨 얼굴을 맞추었다. 나머지 시간은 링을 천천히 원형으로 돌며 3 끝날 때까지 시간을 끌었다. 공격이 되돌아 오니, 아저씨는 전과 달리 파고들지 못했다. 태권도 겨루기를 때도 초보자에게만 강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보다 부족한 초보자를 대상으로 자신의 환상을 푸는 겠지. 자신은 이래야 한다는 이미지에 도취된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이후 종종 꾸던 꿈의 내용이 바뀌었다로 어떤 사건이 생겨 누군가 나를 험담하는 것이다. 나는 어떻게 방법이 없어서 그냥 말없이 지나갈 뿐이었다.

영화에서처럼 보는 것처럼 실제 내용 그대로 회상하는 것도 아니고, 7 넘게 세부 내용만 매번 다르게 꾸는 의문이었는데, 어떤 사건이나 경험이  떠오르는 것은 무의식이 미해결된 과제를 처리하려는 시도라는 말을 듣고 납득이 됐다.

 

그런데 그날 꿈에서 나는 험담을 퍼붓는 사람에게 싸울 듯이 노골적으로 말대꾸하는 것이었다. '어쩔 건데? 덤빌려면 덤벼봐'라는 태도로. 비슷한 내용의 꿈을 , 주제로 꿈을 꾸는 일은 없게 됐다. 나는 과거 사람들이 나를 욕해도 대응할 힘도, 지위도, 인맥도 없 자신의 무력함을 한탄했다는 깨달았다.  세상에는 지위, 재력, 인맥, 육체적 다양한 힘이 존재한다. 누군가 하나로 상대를 무시한다면, 역시 다른 힘으로 사람을 무시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 , 킥복싱을 하면서 체형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20 후반인데도 키가 조금 자랐고, 뼈가 두꺼워졌다. 알아보니 뼈가 두꺼워지는 과정은 근육이 발달하는 과정과 동일하다고 한다. 웨이트를 하면 근육이 미세하게 찢어지면서 근밀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샌드백을 정강이로 차면 뼈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면서 이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골밀도가 높아진다고 한다 (볼프의 법칙). 키가 자란 이유는 늘어난 근육량과 뼈 무게를 견디기 위해라고 나름대로 추측했다.

 

킥복싱 도장에서 주짓수도 함께 가르치기에 8 정도 수업에 나가 봤다. 알아보니 실전에서 가장 강력한 무술은 주짓수라고 한다. 그레이시 가문이 주짓수를 홍보하기 위해 격투 대회에서 모두 주짓수가 우승했다고 한다. 타격도 없으니 킥복싱보다 쉬울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체격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었다. 체격을 어느 정도 극복할 있다는 뜻이지.  체격 차이가 많이 나는 상대에게 깔리면 아무것도 없었다. 기술을 걸어도 상대가 힘으로 풀어버리기 일쑤였다. 이런 체격 차이를 극복하려면 상대 팔다리를 잡자마자 재빨리 기술을 걸어야 하는데, 그렇게 빠른 움직임을 하다 보니 실수로 상대를 치게 되곤 했다. 그러다 보면 빡센 스파링으로 이어질까 걱정됐다. 타격에 가까운 움직임도 존재했다. 주짓수에서는 기술을 풀기 위해 팔꿈치로 상대 허벅지 등을 짓누르는 행동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짓수 기술들은 혼자 연습할 수도 없었다. 상황에 맞춰 바로 기술을 떠올리고 습관처럼 사용하려면 시간이 걸릴 듯했다. 8 정도로 단정하긴 이르지만, 가장 강력한 무술일진 몰라도 일반인이 능숙해 지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느낌이었다.

 

한편 격투기를 배울수록 후두부 가격, 급소 공격, 썸밍 금지 공통된 룰이 있고 복싱, 킥복싱, 무에타이, MMA 각각 세부 규칙에 따라 기본 스탠스가 달라지는 보고 실전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절대 싸우지 말아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연약하고 괴한을 만나면 도망치거나 막대기 같은 도구를 드는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

대학원 2년차, 코로나로 인한 3 거리두기가 시작되었다. 대학원생 공부를 하는 한편 부업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원 박사과정의 평균 졸업 기간이 5년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암울할 같았다. 다른 또래들은 취직해 돈을 벌고 있는데, 만약 학위 논문을 써낸다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을 앱으로 처리하는 언택트 사업이 뜨고, 주식과 코인이 급등해 급격히 부를 쌓은 사람들이 등장하며 경제적 자유, 파이어족 등의 키워드가 뜨는 시기이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자기계발 영상을 보다가 스마트 스토어, 퍼스널 브랜딩, 월 천 버는 자영업 같은 영상들을 접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들이는 노력을 조금만 생산성에 돌리면 쉽게 돈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가지 시도해 보고는 대부분 1, 2주도 안 되어 그만두었다.

 

스마트 스토어 유튜브 강의를 보고 사업자 등록을 마쳤다. 그러나 중국 대량 구매 사이트에서 아이템을 가져와 복붙하는 방식은 이미 포화 상태였고, 특별한 아이템을 소싱하려면 그 업체에 여러 번 찾아가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배송과 컴플레인 대응까지 혼자 처리하려면 대학원 생활에 지장이 생길 것이라 판단했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게 내가 원하던 일이었는가라는 의문도 들었다.

 

외국어를 잘하니 번역을 해볼까 생각하며 번역되지 않은 짧은 책을 골라 혼자 초벌 번역을 시작했다. 책의 1/4 정도 초벌 번역을 진행했지만, 이미 읽은 책을 원문 뉘앙스까지 살리려면 초벌 번역 번은 검토해야 같았다.

번역본이 팔릴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다.

 

주식도 알아봤다. 지식을 얻으며 돈을 벌고 싶다면 분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경제와 금융 지식을 쌓아도 어떤 종목을 사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당연한 , 투자를 통해 돈을 벌려면 공부가 아닌 리서치를 했어야 했다. 특정 종목이나 산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를 찾는 . 그리고 이를 이미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공자도 아니면서, 그만큼의 노력을 투입한 것도 아니면서 근거로 이들처럼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학에서 4년간 공부했는데, 이렇게 지식으로 돈을 벌기가 힘든 걸까? 스스로도 지금까지 해온 대학 4년간의 공부는 왜 대단하게 치부하지 않는 걸까? 하지만 대학에서는 다양한 분야를 개략적으로 배우는 그쳤고, 지적 자산의 특성상 원리를 몰라도 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할 있었다. 그래도 대학에서 4년간 공부한 높게 평가해 사람이 있겠지 싶었지만, 그게 취업이었다.

 

그래도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어 계속 자기계발 영상을 찾아보니 결국 가장 쉬운 버는 방법은 기존 파이프라인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본업에서 익힌 스킬을 서비스로 제공하거나, 얻은 팁들을 강의로 만들어 상품으로 팔거나.

하지만 연구 분야인 AI 지엽적인 주제를 강의로 만들어도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것은 명확했고, 기초 코딩 강의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코딩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했다.

 

어느 하나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어느 하나 제대로 시도해 보지 않았지만, 경쟁력을 갖추려면 상당한 노력이 요구되리라는 걸 깨달았다.

성공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관심 없을 때부터 계속 노력을 투자하며 운이 찾아오거나 실력이 쌓일 때까지 버텨 것이었다. 그렇게 버티다가 아이템 하나가 히트해서, 출판한 하나가 대박 나서, 유투브 영상 하나가 알고리즘을 타서 크게 대박나서 성공하는 것이었다.

물론 로또 당첨처럼 단기간에 성공하는 사례도 있지만, 그것들은 극소수이며 대개 년간의 노력이 필요했다.

 

새삼 꾸준히 하는 게 제일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몇 개월을 들여 명문 단편을 써내더라도, 그렇게 편을 쓰지 못하면 책으로 출판할 없다.

서점에서 하찮아 보이는 책들도 애초에 책을 낼 만큼의 분량을 써낸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인터넷 방송인들이 엽기적인 행동으로 쉽게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무도 보지 않는 상황에서 개월간 지속해 시간과 노력을 떠올리면, 나로서는 도저히 없는 일이었다.

새삼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는 이유를 조금은 같았다.

 

쉽게 돈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초기에 자기계발 유튜브 영상에서처럼, "대다수 사람들은 행동으로 옮기지 않아. 일단 ."라는 말이 맞는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쉽게 돈을 있다고 유튜브 영상을 올리는 이유는, 결국 많은 사람이 영상을 봐야 수익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유투브 알고리즘이 어느 순간부터 '돈을 좇으면 돈은 나를 피해 간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 쪽으로 바뀐 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다는 뜻일까.

가능성이 많으니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모든 것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의 분야에 집중하고 몇 년간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 좋아하고 평생 할 수 있을 만한 건 무엇인가? 나는  질문에 대답할 없었다.

친구가 음악방송 방청권에 당첨되어 처음으로 뮤직뱅크에 가보게 되었다. 어떻게 얻었냐고 물으니 뮤직뱅크의 경우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랜덤으로 뽑히기 때문에 계속 신청하다 보면 언젠가는 된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 기숙학교를 다녀 금요일, 일요일이면 학교에서 운영하는 버스를 타고 집에 갔는데, 그때마다 버스에선 아이돌 음악방송을 틀어주었다. 한동안 아이돌에 빠지기도 했다. 그때 봤던 걸 7년 넘은 지금 현실에서 보게 된다니 감회가 깊었다.

 

내가 앉은 좌석은 무대를 정면으로 하고 오른쪽 두 번째 열 서너 번째 좌석이었다. 단차가 있는 좌석 덕분에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볼 수 있었고 생각보다 무대와 거리가 가까웠다. 아이돌들의 표정과 누굴 보고 있는지까지 파악할 수 있는 거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돌들이 무대로 올라오기 전 대기하는 장소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좌석 바로 앞 공간을 통해 인터뷰하는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맨 앞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바로 앞에서 아이돌들을 보게 되는 것이었다. 어떤 공연을 가봤어도 출연자들을 이렇게 가까이 본 적은 없었다. 마냥 신기했다.

 

 

모두들 예쁘고 멋있었다. 하지만 이외로 떠오른 감정은 '댄스 동아리와 비슷하네'란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연예인이면 뭔가 오오라가 나오고, 사람들의 이목이 저절로 집중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물론 예쁘고 멋있었지만, 댄스 동아리에서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만 모아놓으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직업만 다를 , 그들도 실제로는 평범한 20대들이었다. 하지만 그러자 이번엔 나와 다를 거 없이 보이는 이들이 사실 몇 억씩 버는 사람들이라는 걸 깨닫고 '아 다르긴 다르구나' 생각했다.

 

 

흔히 하는 질문이 문득 떠올랐다. “어떻게 저 어린 나이에 저만한 부를 얻을 수 있었을까?”

나도 주변 사람들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큰 돈을 벌 수 있는지, 아니, 뛰어나게 노력해 좋은 대기업에 취직하더라도 직장 생활을 오래해야 얻을 수 있는 정도의 돈을 어떻게 저 나이에 벌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로또 당첨 통계적으로 운에 의해 성공한 예외도 있지만 (그마저도 돈을 관리할 능력이 없으면 금방 원래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성공은 대부분 투자한 노력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동아리 사람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이들은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문득 공연을 보면서 여기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노력했을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문득 예전에 봤던 시사 유튜버 슈카월드 JYP 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대표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 떠올랐다. “어떻게 한국 아이돌이 세계적으로도 성공하고 유행할 있는지”에 관한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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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쉽게 말하면 케이팝의 가장 큰 힘은 ‘오버커미트먼트(헌신)’거든요. 이만큼 하면 되는 걸 이만큼 해요. 그러니까 팬들도 이만큼 해주시는 거죠.

슈카: 그거 야근 아닙니까, 야근?

박진영: 그렇죠. 예. 가수와 회사가 야근했더니 팬들도 야근해 주시는 거예요. 그게 바로 케이팝의 힘이에요.

슈카: 미국은 딱 할 만큼만 하고, 워라밸이 있잖아요.

박진영:. 그게 선진국의 워라밸인데,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분들이 완전히 팬들을 위한 오버커미트먼트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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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영상에서 자주 나오는 말처럼, 성공을 위해선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분야든 성공하는 길은 결국 원칙으로 귀결되었다.

 

같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혼자 완전히 자기 통제를 하긴 어렵지만,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힘들어도 연습에 나서게 되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기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동안 그렇게 버틸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모두가 그렇게 없다면, 결국 그런 사람들만 남게 되는 것이겠지. 격투기에서 팔다리가 사람들이 자주 보이는 것처럼, 재능과 꾸준한 연습이 더해져. 인터뷰에서 “아이돌 케이팝을 다른 나라들도 똑같이 있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연습생 시스템과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쉽게 따라잡을 없다”라고 내용이 이해가 되었다. 거기다 모두가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성공하면 가장 예쁘고 청춘을 즐길 때를 경제활동에 사용하니 그만큼 돈을 버는 겠지.

 

번도 이렇게 생각해 적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도 아이돌을 얕보는 듯한 대화가 들렸던 것은 역시 질투 때문이었겠지. 나도 그들처럼 생산적인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렇게 결심하더라도, 실제로 뭔가를 이루려면 한참 후가 것이다. 동안 버린 시간만큼. 그래도 한순간 마주친 것에 뭔가 좋은 기운을 얻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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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유니브 에세이 클래스에서  원고입니다. 코로나 거리두기  줌으로 비대면 진행하고, 어차피 아무도 모를  의지를 다지고자 약간 자신을 이상화함.  학기 정도 스터디 카페 열심히 다녔지만 다음 학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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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자존감이 뭔지 진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 있어요.”

 

그래요? 들려주세요.”

 

상담 5회차였다. 인간관계를 주제로 대화를 하다가 자존감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자존감은 자신의 사회 내에서 위치를 평가하는 본능적인 척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필연적으로 능력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꼭 공부를 잘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나는 이 면에서 특히 유별나다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 외엔 자신이 목표를 향해 착실히 나아가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내 목표를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게, 어느 면에서 이미 달성한 것과 같은 효과를 일으키는 것 같아요.”

 

말이 쉽지, 목표를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기 위해선 자신이 정말로 이것을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확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안 되겠지, 한 번 해보고 되면 좋고 안 되면 말고, 란 생각을 갖고 있으면 어느 순간 그 정도만 노력하는 나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것도 유효기간이 있는 것 같아요. 전에 크게 뭔가를 달성한 경험이 있어도 시간이 흐르면 흐릿해지니까. 예전 고등학교 입학 때는 자존감 높았거든요. 입학 때는 공부 잘하는 편이었고. 근데 그 사건 이후 지금 상태인 것 보면….”

 

고등학교 2학년, 험담으로 시작된 내 루머는 어느새 전교에 퍼졌다. 기숙사 학교에서 루머는 입에서 입을 타고 같은 반 내에서 양옆 반, 학년 전체, 학교 전체 순으로 전염병처럼 퍼졌다. 그 이후 내 인생은 내리막길이었다. 사람들을 기피하고 누구와도 연관되고 싶은 마음이 없어 스스로 방 안에 갇혀 지냈다.

 

그럼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나요?”

 

규칙적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해요. 아침 일어나서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고, 낮에 2시간 휴식하고 다시 스터디 카페. 밤엔 헬스장을 반복하고 있어요. 못 지키는 날도 많지만, 그래도 그렇게 사니 자존감이 높아지고 삶에 충실한 느낌이에요.”

 

충만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쓸데없이 내 시간을 허투로 보내는 사람이 아닌, 내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일상을 하찮게 보내면 나 오늘 뭐했지?’란 생각이 들고, 이 생각은 자존감을 직접적으로 하락시켰다. 무엇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만 하던 예전의 나보단 건설적인 삶이었다.

 

그렇게 뭔가를 달성하는 것만이 자존감을 올리는 유일한 방법일까요?”

 

상담사는 그런 나를 걱정하는 듯했다. 아마 목표 달성에만 집착하는 것이 지나친 물질주의적 생각이라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반대로 낮게 보는 면이 있어, 그것에 대해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안 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는 건, 그 자체로 자존감을 구성하니까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원한다는 게 직접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나타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걸 자존감의 근원으로 삼기엔... 중간에 헤어지거나 부모님 등에게 거부당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 때문에... 그것만으론 부족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안 그럼 나쁜 생각 밖에 안 들어요."

 

자기발전, 혹은 관계에서의 수용. 이 두 가지가 자존감을 구성하는 유일한 것들 같았다.

사회 내에서 자신의 가치.

 

상담하면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단어가 능력, 달성이거든요. OO 씨는 유독 거기에 집착하는 것 같네요.”

 

문득 내가 상대적으로 인간관계에 약했기에 능력 면에 집착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무언가를 달성한다는 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반드시 좋다고도 생각되지 않거든요.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존감을 얻을 수 없을까요?”

 

음 부모님이요. 일단 부모님께 정말 감사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마음을 나누고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얘기하기엔....”

 

.. 그래요..”

 

부모님 외 다른 사람들은... 지난번 얘기한 것처럼 현재는 인간관계가 거의 단절되어 있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쌓아야 하는데 그러자니 하고 있던 외부활동 다 코로나 3단계로 스탑됐고..”

 

“....”

 

침묵이 흘렀다.

 

그래도 지금이 코로나라서 그렇지, 코로나 끝나면 다시 활동 재개되니까 그때 인간관계에 좀 더 신경 쓰면 될 것 같아요. 지금은 모임도 금지되고 만날 사람도 없으니, 최대한 제 할 일에 신경 쓰는 게 지금 상황에서 제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인 것 같아요.”

 . OO 씨만 괜찮다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죠.”

처음 나간 모임에서 간단히 회식을 하게 되었다. 나는 여자 두 분과 함께 3명이서 앉게 되었다. 같은 모임이긴 해도 활동할 땐 말할 기회가 없어 초면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자 둘은 고등학교 때 친구라고 한다. 통성명, 학교, 가족관계, 모임 오게 된 이유 등 의례적인 정보 교환을 마치고 침묵이 흘렀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하다 새로운 질문으로 다른 화제를 꺼내려 했지만, 대화는 계속 끊기기 마련이었다.

 

짜증난 건 여자 두 분 중 한 명이 거의 말을 안 했다는 점이었다. 정보 교환을 하면서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사람이었는데, 무슨 얘기를 꺼내도 단답으로 끝내는 데다 내가 다른 한 명과 대화가 잘 이어질 때면 갑자기 친구에게 관심을 달라는 듯 말을 걸어 계속 대화가 끊겼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둘이서 그 주제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내심 짜증이 났다. 나도 대화를 이끌어내는 편은 아니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열심히 화제를 생각해가며 대화를 이으려 하는데, 분은 그렇다 치더라도 남자친구가 있다는 여자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일부러 방해하나? 친구 따라 왔지만 자신은 남자친구가 있으니 모임에서 다른 남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피하고 싶고, 그렇지만 친구가 다른 남자와 친해지는 모습은 보기 싫다는 심보일까? 본인은 거의 말을 하면서?

 

결국 나도 이상 얘기하지 않게 되었고, 화제는 같은 모임인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꺼낸 재미난 경험에 대한 리액션으로 흘러갔다. 모임이 끝나고 인사하고 헤어지긴 했다.

 

모임이 끝나고 약간 후회됐다. 내가 대화를 이끈 건지, 아니면 어쩔 없었던 건지... 누구나 화제에서 대화를 이끌어 나가기 힘들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다른 또래들에게 상담하면 어떤 반응을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뻔했다. 자기와 맞고 맞는 사람이 있으니 어쩔 없다고 생각하면서, 내심 웃고 즐길 있는 분위기로 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말은 그렇게 해도 자기 안에서의 평가는 냉정한 편이었다. 남자나 여자나. 대화를 이끌어 가지 못하는 콤플렉스였다.

 

비슷한 상황이 다른 모임에서 연출되었다. 나를 포함해 남자 , 여자 명이서 앉게 되었는데, 어떤 질문을 하거나 화제를 꺼내도 여자 모두 단답으로 말이 끊겼다. 내성적인 성격인 것을 감안해도 이상할 정도로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 친하지 않은 사이는 남녀관계로 생각되어 그런가…

 

내심 짜증이 말을 건네지 않기 시작했다. 이외였던 같이 앉은 남자애였다. 끊임없이 화제를 꺼내고 분위기를 바꾸려는 모습에 감탄했다. 계속 얘기하고 농담을 해서 웃겼어도, 둘은 다시 원래대로 침묵하기 마련이었다. 계속 여자 둘에게만 질문하면 어색하니, 나에게 먼저 질문하고 대답은 대충 듣고 바로 여자들에게 건네는 보였다. 그래도 이렇게 침묵이 흐르는 것보단 나았다.

 

나는 사실상 포기 상태였다. 애초에 말을 잘하는 편도 아닌 데다, 어떤 얘기를 해도 차갑게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에 감정이 상했다. 완전히 면접보는 느낌이지 않은가? 친해지려고 아니라 “일단 네가 어떤 사람인지 보겠다”는 듯한 눈빛에, 지금 상황이 사실상 소개팅 비슷한 상황이라는 이해했다.

 

그런데 어느샌가 대화가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그 남자애의 끈기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여자애 명과 남자애만 거의 대화를 했지만, 처음의 그 분위기에서 지금 상황으로 바뀔 있다고는 생각도 했다. 이건 진짜 내가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알게 것이지만, 둘은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호감이었던 같다. 같이 걸으며 대화해도 어색하지 않았던 보면… 둘은 정말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것이다. 한명은 특히 심히 내성적일 정도로. 애초에 대화가 필요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남자애와 여자애는 연락처를 교환하고 연락하는 사이가 된 것 같았지만...

책과 학문과 신앙 (3) - 학문의 재미

 

사람은 죽으면 영혼만 남는다. 그렇다면 최대한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는 것이 삶의 목적일 것이다. 유튜브로 교양 강의를 보다가 점차 지식을 얻는 자체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방구석 백수 생활을 하며 하루 종일 교양 강의(주로 순수과학) 보다 보니, 어느 순간 알고 있는 내용이 반복되었다. 이상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특정 과목을 깊이 공부해야 한다는 깨달았다. 두꺼운 전공책을 혼자 독파해야 하나 걱정되는 와중, OCW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OCW Open Course Ware(공개 강의) 약자로, 대학 강의들을 녹화해 공개한 것이다. MIT, 하버드, 유명 인도 공과대학 등에서 무료로 유투브에 강의를 제공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강의의 질이었다. 대학 강의에서는 교수님들이 칠판에 공식 개만 적고 나머지는 말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공개 강의는 달랐다. 어려운 유도 과정도 직관적인 해석과 함께 PPT, 3D 애니메이션, 실제 실험 시연 다양한 시각 자료를 활용해 설명해 주어 훨씬 쉽게 이해할 있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전공인 전자공학에도 흥미를 느낄 있었다.

 

물질 세계에서는 너트와 볼트, 콘크리트와 철근이 모여 기계와 건물을 만든다. 작은 단위들이 차곡차곡 쌓여 거대한 구조물을 이루듯, 정신적 세계에서는 개념들이 쌓여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 간다. 전제에서 시작해 유도 과정을 거쳐 결과로 이어지는 전개가 반복되며, 학문의 틀이 잡혀가는 것이다. 물질 세계에서 도구가 필요한 것처럼, 정신 세계에서는 개념이 역할을 한다.

학문을 공부하며 이런 구조가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다. 마치 탄탄한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개념들이 서로 연관되고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신비로웠다. 특히 공학이 좋았던 이유는, 사회과학이나 생물학처럼 가지 개념에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개념으로 확장되고 발전해 나가는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공학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아니지만, 과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말했듯이, 꽃의 생리나 분자 구조, 화학 작용을 몰라도 아름다움을 감상할 있었다.

 

그렇게 OCW 강의를 하나씩 찾아보던 ,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무언가에 대한 전문가가 되는 방식으로는 누구도 찾지 못한 진리를 발견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나를 깊게 파서 삶의 진리에 다가갈 수 있었다면, 각 분야 교수님들이 종교적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교수님들은 이미 자신들의 학문에서 인생에 적용할 만한 핵심 통찰(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 광속 불변의 법칙, 유전자의 존재 ) 일반 교양 강의로 정리해 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물리학이나 생물학 같은 특정 분야에 세상의 진리가 있다고 믿는다면, 교수님들보다 더 깊이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봤자 단 한 가지 사실을 겨우 알게 될 뿐이고, 결국 세상의 진리를 파악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런 방식으로는 내가 원하는 세상의 본질에 해당하는 진리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리를 얻으려면 한 분야를 깊이 파는 것보다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익혀 통찰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책과 학문과 신앙 (4) - 세계관

 

나는 인간 자체가 세상 법칙을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다. 도구나 건물, 사회 체제를 만든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물리 법칙 세계가 돌아가는 법칙 자체를 변화시킬 있다고. 예를 들어, 유전자 조작은 원래 불가능했지만, 연구자들이 정신적 (노력과 의지) 쏟으며 어느 순간 가능해진 것이 아닐까? 어떤 사실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이란, 의지를 부딪쳐 그것이 가능하도록 세계의 법칙을 변화시키는 행위라 생각했다. 기존의 다수 의지로 이루어진 세계의 법칙을 완전히 덮어쓰기에는 힘이 부족하므로, 기존 법칙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포함할 있는 새로운 우회로를 만들어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이 그렇게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장은 인간이 다른 생물과는 다르게 특별하다는 생각에 기반했으나, 과학 교양 강의를 보면서 인간의 고유 능력으로 여겨졌던 협동과 지성도 사실 유전자의 변이에 의해 우연히 방향성이 정해진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는 윌리엄스 증후군과 유사한 유전자 변이를 통해 인간의 호의를 얻어 번성한 것처럼, 인간이 공동체 단위로 협력할 있었던 것도 특정한 유전자 변이 떄문일지도 모른다. 철학에서 그토록 찬양하는 인간의 이성도, 결탁과 음모가 넘치는 집단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달된 능력을 수학이나 과학에 이용하는 (사회적 두뇌 가설), 이성 자체가 신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NOTCH2NL 유전자의 우연한 변이로 인류는 뇌를 크게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그게 성공적이어 인간이 먹이사슬의 최상위 군림할 , 다른 생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특별하지 않다면 삶의 목적, 아니 우주의 목적은 무엇일까? 옛날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꾸준히 발전한 것. 고도화된 지식 체계 자체가 우주의 목적이 아닐까. 새로운 물질이나 정책이 생겨나면 기존에 있던 것들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이 생겨난다. 인류 역사 얼마나 없이 많은 학문, 스포츠, 예술, 사람들의 고유한 경험이 생기고 없어지고, 생물 역사 얼마나 많은 유전적 변이들이 생기고 사라졌을까? 팽창하는 우주는 축적되는 정보 자체를 나타낸다. 우주의 목적은 최대한 많은 정보를 축적하는 것이리라.

 

이유는, 만약 우주에 자아가 있다 아마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 아닐까. 처음부터 완벽하면 정체되어 있고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의 한계가 있기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전략을 짜며, 과정에서 학문과 예술이 탄생한다. 만약 우주가 정말 하나의 생명체라면, 죽음 이후 자신은 우주와 통합되어 이런 깨달음을 얻지 않을까? "이런 유전자와 환경적 조건을 설정하면 이런 삶을 살고, 이렇게 상호작용하게 되는구나" 하고.

 

종교 지도자들이나 명상하는 사람들, 혹은 마약을 해보거나 몰입 상태를 경험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내가 세계이고, 세계가 "라는 느낌이다. 이는 결국 우리가 모두 하나라는 본질적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함께 정보를 쌓아야 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죽이거나 해하는 것일까? 그래야 전략이 생기기 때문이다. 유전적 차이로 인해 사람마다 강점과 약점이 다르고, 이를 기반으로 각자가 최선의 전략을 선택한다. 결과, 세계는 전체적으로 발전해왔다. 전쟁으로 인해 문명이 일시적으로 퇴보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부작용에 불과하며, 흐름에서는 여전히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상, 객관적 근거는 하나도 없는 망상이었다.

책과 학문과 신앙 (1) - 삶의 의미

20대 초반을 안에서만 지냈다.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도 않고, 사람을 만나지도 않고, 혼자 방에 틀어박혀 시간을 낭비할 뿐이었다. 대인기피가 심해 과식과 불규칙한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종종 아픈 곳도 생겼다. 애니메이션을 하루 종일 시청하며 가상세계로 도피하려 했지만, 나는 결국 현실에 사는 사람이라는 깨달았다.

 

그러고 나니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노인이 되고 나서야 고민을 지금 하게 되다니 싶었지만, 영화, 음악, 소설, 애니메이션, 드라마, 예능, 피아노... 사람을 만나지 않고 있는 같았다. 이런 하지 않을 때는 안에 정적이 감돌아, 죽고 나면 무엇이 남는지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일단 신은 없다고 생각했다. 집안이 천주교 신앙을 가졌기에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식사 기도를 항상 했지만, 어느 진지하게 신이 존재하는지 고민해 없다고 결론짓고 기도를 그만두었다. 성경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싸우지 말며 평화롭게 지내라고 가르치지만, 전쟁과 살인이 몇천 동안 계속되었다면 신은 없다고 봤다. 근대 과학이 발전한 이후에는 기적이 보고된 적도 없었다. 종교는 억제력이 없었던 옛날에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불교는 어떤가? 자기 수양을 통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지만, 단지 그것뿐인 것이 아닐까. 수도승이 명상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현실 세계를 변화시켰다는 사례는 없었다. 명상을 통해 뇌의 알파파와 체온을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자기 정신 안에서는 뭐든지 생각하고 할 수 있다. 종교가 의미 있으려면 현실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거의 모든 종교의 핵심 요소가 아닌가.

 

죽을 사람은 육체와 물질을 놓고 떠난다. 사람들이 사후 세계를 생각하는 것은 영혼은 존재한다는 전제이다. 무로 되돌아 간다면 어차피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럼 영혼만이 오직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치매나 사고 등으로 뇌에 손상을 입는 경우를 제외하면, 죽을 때 지식과 경험을 그대로 가지고 간다. 아니, 사실 뇌에 손상을 입어도 인간의 영혼은 그대로인 것이 아닐까? 영혼을 전파에, 뇌를 텔레비전에 비유한다면 텔레비전이 고장 나도 전파는 그대로 남아 있다. 단지 전파를 표현할 기기가 고장 났을 .

 

그렇다면 최대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경험이 응축된 책을 읽고, 다양한 사고방식을 익힐 수 있는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현대에 들어서고 어떠한 종교도 기적을 입증하지 했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현실을 변화시킬 있다는 학문이야 말로 진정한 초능력이자 신앙이 아닐까. 사람들 사이의 법칙인 정치와 현실세계 자체를 변화시키는 과학. 그렇게 공부하다 보면 세상의 진리를 발견하고, 살아 있는 동안 의지대로 자유롭게 이 세계를 벗어날 수 있게 되면 가장 좋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믿음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유튜브 교양 강의를 보고 책을 읽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진리라고 부를 만한 것을 찾기 위해 궁금한 것을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책과 학문과 신앙 (2) - 천재 재능

천재들은 무엇이 다른가? 지식을 얻는 것으로 영혼이 성장할 있다면, 가장 먼저 알아야 것이었다. 무작위 숫자 수십 개를 만에 외울 있는 사람들이나 체스 선수처럼 앞을 내다보는 예측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을 따라잡을 없는 것이 아닐까? 한편, 나도 내가 모르는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면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아인슈타인과 문워킹을'이라는 책을 읽고, 기억술이라는 분야가 존재하며 이런 것들을 외우기 위한 방법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억의 궁전'이라는 방법이 있다. 우선 인간은 이미지와 공간을 기억한다. 무작위 단어는 기억하기 어렵지만, 무작위 사진을 보여주면 며칠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다. 핵심은 익숙한 공간에 순서를 정해 놓고, 사물들을 그곳에 배치해 기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 '모자', '아이스크림', '난독'이라는 단어를 순서대로 외워야 한다면, 집에 들어왔는데 현관에서 칼을 강도를 마주치는 이미지, 거실에서 모자 쓰고 춤을 추는 동생, 부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엄마, 아빠가 방에서 찡그리며 신문을 읽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기억하는 방식이다.

 

숫자 변환 기억법이라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ㄱ은 1, ㄴ은 2, ㄷ은 3… 등으로 대응시켜 무작위 숫자 11323(ㄱㄱㄷㄴㄷ)을 '고교 다녔다'라는 문장으로 변환하거나, '고기', '덧니', '독' 같은 단어로 변환한 뒤 기억의 궁전에 배치해 외우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핵심 도구들을 장기기억에 저장해 두고, 이를 기반으로 스토리나 영상을 만들어 기억하는 것이 기억력 대회 선수들의 방법이었다. 무작위 단어나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부호화’가 핵심이었다.

 

기억력은 외우는 것이니 그렇다 쳐도, 체스는 다르지 않을까? 체스 선수들은 일반인과 달리 앞을 예측해야 하니, 진정한 의미에서 지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알고 보니 체스에도 이론이 있었다.

 

체스 이론은 오프닝, 미들게임, 엔드게임으로 나뉜다. 오프닝은 기물들을 유리한 위치에 배치하는 정형화된 수순으로, 선수들이 초반에 빠르게 수를 있는 이유다. 정해진 이론을 따라 순서대로 두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오프닝 이론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수를 계산하지 않아도, 구조나 중앙 차지 중간 상황의 유리함을 평가할 있는 개념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미들게임은 오프닝 이후의 전략 싸움으로, 단계에서 승패가 결정된다. 엔드게임은 기물이 남은 상황에서 체크메이트를 만드는 방법들로, 역시 정형화되어 있다. 선수들은 오프닝과 엔드게임 이론을 철저히 외우고 있으며, 수읽기 능력 또한 선수들 간에 차이가 없기 때문에 승부는 주로 미들게임에서의 전략과 상대 기보를 얼마나 깊이 연구했느냐에 따라 갈린다고 한다.

 

체스 선수들은 판에 놓인 기물 배치를 한 번 보고 기억하고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도 파악할 수 있지만, 기물들이 무작위로 배치된 판을 외우는 건 일반인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체스 선수들이 몇 수 앞을 읽을 수 있는 건 체스에 한정된 것이었다.

 

그럼 수능 수학은 어떨까. 수학 공부는 재능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유튜브에서 공부로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보니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결국 수학 문제도 패턴이라는 것이었다. 개념을 응용해서 있는 문제 패턴은 어차피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보다 보면 패턴이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일단 풀어도, 양이 중요하니 답지를 보고 넘어가야 한다고 한다. 수학도 결국 암기의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들면서 우연히 '1 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읽고,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있는 사람들은 분야의 전문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장기 기억에 저장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단기 기억에 7~9개의 정보만 저장할 있기 때문에, 개념을 구조화하여 장기기억에 넣어두는 것이 전문성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말은 이론과 학문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어떤 개념을 정리화하고 체계화하는 . 체스 오프닝 이론과 공학 책에서도 어떻게 이런 식으로 생각했지, 어떻게 이런 것들을 이런 식으로 쳬계화해낼 있었을까 신기했다.

 

천재와 재능은 사실 없었구나 실망하는 한편, 나도 충분히 시간을 들이고 노력하면 못 것이 없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 이후 단 하루도 지연이를 안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 삶의 동기가 되었다. 코로나 심화로 인한 거리두기가 시작되고 모든 모임이 스탑된 겸 한동안 스터디 카페에 박혀 살았는데 힘들 때마다 새로 뜬 지연이 인스타 게시물이 삶의 낙이 되었다. 왜 이렇게 귀여울까. 딸 낳은 아빠가 이렇지 않을까. 
그동안 진짜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시도한 것도 많았고, 노력한 것도 많았다. 썸 등 인간관계의 현실에 대해서 깨닫고. 경제적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도 알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지연이와의 시간은 더 빛을 발하고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차릴 뿐이었다. 보고 싶다. 그럴 때마다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었다. 답해도 이상해지 않을 인스타 질문에 두 번 정도 답했고, 한 번 지연이를 연상시키는 것 같아 귀여운 동물 사진을 보내거나 새벽에 고백의 전 단계 비슷한 문자를 보내 보았다. 그럴 때마다 지연이는 내가 보낸 내용과 뭔가가 연관된 게시물을 스토리에 올렸다. 그래서 호감이 없는 게 아니라면 인스타 dm으로 만나고 싶지 않아서 자연스레 다시 만나는 일을 기다리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매우 얕은 증거였지만 무엇보다도 서로의 감정이 전해진 것 같은 그 순간이 뇌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서로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말이 전해진 것 같은 그 때의 순간. 

그러다 어느날 뜬 지연이의 인스타 스토리 게시물. 모 학원에서 시간이 비어 그 시간에 원데이 클래스를 연다는 것이다. 지연이를 만날 수 있는 기회였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렇다고 갑자기 이렇게 나타나면 어떻게 생각할까? 계획을 짜야했다. 예전에 친구가 춤 배우고 싶다는 얘기를 했어서 얘랑 같이 가고, '전 춤 좋아하고 친구가 춤 배워보고 싶다기에 같이 왔어요' 하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에게 이 날 시간되냐고 물었지만 선약이 있다고 한다. 혼자 클래스 들으러 간다는 생각으로 가야했다. 괜히 같이 듣는 사람과 지연이 수업 방해하지 말고. 수업 듣는 동안 수업에만 집중하고. 아직도 서로 호감이 있는 것 같으면 끝나고 대시해도 늦지 않는다. 

그리고 지연이 클래스 당일. 건물 층 하나를 차지한 작은 학원. 학원에 들어가니  4명 정도의 사람 밖에 보이지 않아 지연이 수업을 들을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북도에서 지연이를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어. 오랜만이네요.'
'네' 
'곧 시작하니까 기다리고 계세요.'
저음의 목소리만 들어봤던 지연이(그래봤자 두세줄이지만)는 하이톤의 목소리로 바뀌었었다. 다행히도 불편해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행이었다. 지연이 수업을 듣는 사람은 나 포함 남자 두 명, 지연이 포함 여자 세명이었다. 알고 보니 나 제외 다른 사람들은 서로 아는 사이인 거 같았다. 나 외엔 지연이 지인들이 클래스에 온 것 같았다. 

그리고 수업이 시작하고… 뭔가 이상했다. 
바지 주머니가 없어 혹시라도 밟을까 핸드폰을 벽에 세워뒀는데, 지연이가 핸드폰 쪽으로 가며 확인하는 것이었다. 
다른 클래스 혼자 가면 가끔 겪는 일이었다. 혹시나 처음 보는 사람이 촬영해 가는 거 아닌가라는 의심. 그런데 지연이는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 좀 긴 시간을 내 핸드폰 주변에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러는거지..? 내가 과하게 생각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날 싫어하는 느낌은 아닌 거 같았다. 내가 동작을 못 따라오고 있으면 옆에서 같이 해주기도 했기 떄문이다. 하지만 뭐라 표현 못 하겠는, 미묘한 무시하는 느낌인가, 뭔지 모를 불쾌감이 스며들었다.
수업 끝날 때 쯤 여자, 남자로 그룹을 나눠 연습한 안무를 보여줄 떄 '이제 남자들... (차례)' 라고 말하는 미소한 경멸이 섞인 지연이 말투에서 다른 남자얘도 지연이에게 호감이 있어서 이 클래스에 왔다는 걸 깨달았다. 지연이는 나를 갑자기 클래스를 수강하러 들어 온 처음 보는 아저씨처럼 생각한다는 걸 알았다. 미묘하고 특별히 어떤 행동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떠올릴 수 없었지만, 1시간 동안 같이 있으면서 그렇게 생각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수업이 끝났다. 먼저 연습실에서 나왔지만 허무함과 이렇게 갈 순 없다는 생각에 정수기에서 물을 마셨다. 몇명인지 모를 사람들이 지나가고, 물을 다 마시고 돌아보니 옆 의자에 지연이가 앉아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예전에 힙합 클래스 같이 듣던 분이시죠? ㅇㅇ에서?'
'아.. 기억 하시네요. OO 힙합 클래스 같이 들었어요.'
'진짜 오랜만이네요.'
'네 맞아요.' 
'수업 어땠나요?'
'너무 힘들었어요.. 동작이 너무 빨라가지고 따라가는데 어려웠습니다..'
'아.. 오늘 안무가 좀 빨랐긴 하죠.'
솔직한 감상이었다. 체구가 작을수록 빠른 춤 추는데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전공이 뭔가요.. 힙합이에요?'
'코레오요.'
지연이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안무 영상은 많이 올리지만 어떤 전공인지는 안 적어서 몰랐다. 뉴스쿨 힙합은 코레오랑 구분하기 힘들기도 하고. 

정적이 흘렀다. 

'예전에 OO 학원 다녔을 때 볼때마다 되게 밝고 열심히 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서... 인스타 게시물에 뜨길래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서 왔습니다.'
중의적이고 애매한 표현. 혹시나 싶어 모 학원 인스타도 팔로우 했었다. 예전에 지연이 인스타를 말없이 팔로우한 것에 대해 내키지 않아하는 경우, 종종 이 학원에서 수업을 들어서 홍보 게시물을 보고 왔다고 하려고 했다. 
'아.. 그랬군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끝맺는 말을 했다. 약간의 당황한 표정이 보인 거 같은 건 내 착각이겠지. 그 말을 마치자 지연이는 친구들 곁으로 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끊임없이 생각했다. 전부 다 내 착각이었을까. 이틀 전까지만 해도 지연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났는데, 수업이 끝난 지금은 너무 허무했다. 얼만 전까지도 상상한 건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내가 왜 이렇게 느낄까. 내 기대가 큰 나머지 별 거 아닌 걸 과하게 생각하는 거라고 몇 번이나 생각하다가 그렇게 느껴질 이유가 있었고 나도 행동도 그렇게 했는데 내가 못 받아들인 것 뿐인 걸 받아들였다. 원망은 없었다. 너무 쉽게 진행됐다고 생각했지. 

 


어디서 잘못된 걸까? 


나 혼자 운명적인 사랑으로 여기며 혼자 굴을 판 거 같지 않다. 평소 눈치보는 성격 탓에 평소에 사람들의 표정을 세밀하게 파악하게 되었다. 방금 지연이가 나를 보았던 느낌을 잘 못 보았을 리는 없었다. 그리고 2년 지연이의 호감을 내가 착각했을 리도 없었다. 이미 몇 번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대형 교양 강의 막날, 여자 4명과 팀이 된 적 있다. 간단한 과제를 수행하는 일이었는데 여자들 모두 갑자기 행동을 매우 의식하거나, 힐끔힐끔 쳐다보는 온갖 척은 다하고, 집적적으로 다가오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는 것이다. 거기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자친구가 그 중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은 단 한 명이었다. 내가 거기에 속아넘어가 티날만한 행동을 하나도 안 했던 걸 다행으로 여겼다. 
그래서 거르고 거르고, 자신의 호감을 감추지 못하고 솔직하게 드러나는 것 같은 지연이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 수 있었는데…

2년 사이 지연이가 달라진 것일까? 이번에 본 지연이의 모습도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말하기 그렇지만 도파민에 중독된 여타 다른 여자들과 같이 느껴졌다. 예전에 내가 봤던 내성적이고 어딘가 조심스러워 하는듯한 모습은 이제 없었다. 

대학 처음 입학하거나 동아리 처음 들어올 때는 심히 내성적이나 대학 생활과 동아리 생활을 하며 외향적이 되는 여자들이 있었다.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하는 건 좋은 방향이지만 남자들의 호감을 양식으로 성장했다는 게 눈에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연이에게 비슷한 느낌을 느꼈다. 

지연이의 첫 내 휴대폰 위치를 보는 행동. 지금 생각하면 일부러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짜고짜 얘기도 안 하고 가서, 지금은 별 생각 없는데 적극적으로 대시할 까봐 미리 저런 행동으로 선수를 친 것이다. 

모르겠다. 과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어쨌든 끝난 건 끝난 것이다. 2년 기다린 짝사랑의 결과는 너무 허무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생각하다가 고등학교 때도 졸업과 동시에 헤어지는 커플들이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단지 그뿐이었던 것이다. 나를 좋아했었다면 졸업하고 4개월이 지나고, 별 것 아닌 인스타 질문에 내가 답했을 때 단지 인스타에 표시를 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답장을 하거나 만나려는 행동을 했겠지. 이걸 인식하고 나서야 나를 좋아한 게 아닌 걸 받아들였다.

그래도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게, 그렇게 결심했어도 불구하고 계속 생각났다. 이렇게 된 게 너무 아쉽고 미웠지만, 다시 다가 온 다면 친해지고 싶었다. 이 정도 쯤이야 여자들이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2년 동안 안 봤으니… 실컷 썸 타놓고 나중에 밥 한 번 먹자하니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정색하며 다음 날 바로 다른 남자애한테 여우짓하는 얘도 있었는데.. 이 정도 망설임 정도는 여자애들이 할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연락할 순 없었다. 걔가 그렇게 대했는데 내가 현재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인스타 DM으로 연락하면 이번에야 말로 나에 대한 존중과 인간으로서의 평가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나나 그 애나 이렇게 장기적으로 일주일 한 번씩 꾸준히 만나며 호감을 표현하는 사람을 어디에서 만나나? 내 인생 앞으로도 이렇게 장기적으로 꾸준히 만나며 친해질 사람이 있을까. 지연이가 예전 추억을 떠올리고 적극적으로 다가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다가와주면 나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은 지나고 아무 일도 없었다. 

왜 달라졌을까? 지연이도 이제 고등학생도 졸업했고 인스타도 이제 천명이 넘어 협찬도 들어오니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난 단지 조용하고 자존감이 낮던 시기에 적절히 호감을 표시해 준 사람에 지나지 않았고. 그 호감이 싫지도 않았고, 좋았지만 이제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보고 싶지 않았던. 그래도 나 혼자 착각하는 애매한 상태가 유지된 건, 최후의 보루가 있었다는 생각. 

하지만 나라고 다를까. 
진화심리학에서 여자가 높이 평가하는 건 자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남자의 능력이고, 남자가 높게 평가하는 건 여자의 출산 능력을 암시하는 젊음과 외모이다. 
내가 좋아했던 지연이의 볼 빵빵이란 특성도 20대 초반의 특성이란 걸 깨달았다. 사람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20, 21살 넘으면 빠르게 없어지고, 볼살을 호감 요소로 보는 남자들도 꽤 있는 거 같았다. 나이도 대학원생이고 나도 지연이를 이렇게 예쁘고 어리고 성격 좋은 사람은 이제 다시 만날 일은 없다고 생각해 좋아했을 뿐일 것이다. 

비극도 희극도 아니고, 단지 현실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우연히도 9개월 뒤 또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취미로 클라이밍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담한 두 여자애가 내 옆에서 다른 문제를 풀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익숙한 얼굴이다 생각하고 쳐다보다가 옆에서 여자애가 '지연아'라고 부르고 나서 이 얘가 지연이인 걸 깨달았다. 지연이는 나인걸 못 깨달은 것 같았다. 별다른 반응 없이 3분 정도 뒤 친구와 함께 다른 문제 풀러 나갔다. 
'이런 거 겠지'라고 생각했다. 운명이란 없고, 시간이 지나면 바로 옆인데도 서로인지도 못 알아보는 게 현실이겠지. 애초에 나를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그런데 30분 정도 지나고 이번에는 꽤 떨어진 거리에서 문제를 풀면서 지연이는 이번에는 나인 걸 꺠달은 것 같았다. 이번에는 호감 섞이고 약간의 반가움도 눈에 보이는 게 지난 번 지연이 클래스 갔을 때와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나는 아무 반응 없이 무표정이었다. 3분 정도 뒤 집으로 가려 탈의실로 이동했다. 운동한지 어느덧 2시간이 넘었고 체력도 없었다.  

나가기 전 휴식공간을 지나가면서 지연이가 친구들과 같이 앉아 있는 거 보였다. 지나가며 나에게 얼핏 말을 걸지 않을까 의식하는 느낌에 나를 그렇게 싫어하진 않구나 생각했다. 

 


그로부터 1년 뒤 홍대입구역 이동통로를 지나가면서 서로 마주치고 지나갔다.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내가 쳐다보자 고개를 내려서 나인 걸 알아챘는지는 모르겠다. 그간 운동을 많이 해서 체형이 달라졌었기 때문이다 (자랑). 
그로부터 또 8개월 뒤, 뭐 하고 사나 인스타를 확인하다가 남자친구가 생긴 걸 알았다. 이제 인스타 팔로워는 만명이 넘고 협찬도 꽤 들어오는 것 같았다. 이제 더 이상 안 봐야겠다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 때의 나는 크게 내세울 게 없는 것 같았다. 성격도 내성적이고 춤도 잘 추는 편도 아니었고, 10대들이나 다니는 이런 학원에서 시간을 때우는 사람으로 봤을지 모른다. 아무리 같이 시간을 보내고 좋은 감정이 있었더라도, 추억만을 믿고 깊은 관계를 맺기는 너무 가혹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 때의 지연이는 그런 나를 정말로 순수히 좋아해주었구나 생각헀다. 주 한 번 그 학원을 다닌 1년은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때 중 하나였다. 지연이를 마지막 보고 30살이 된 지금까지도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종종 웃음이 떠오르는 것 보면, 난 아직도 그 시절의 지연이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깨닫았다.


스트릿 댄스를 더 배우고 싶어서 댄스 학원에 등록했다. 대학교 스트릿 댄스 동아리에서 1년간 활동했지만 거의 공연 안무만 반복하고, 그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가까웠던 댄스 학원에 등록해서 힙합이란 장르를 좀 더 알고자 했다. 마침 대학원 입시도 끝나 시간이 남았었다. 

처음 댄스 학원 수업에 들어갔을 때 놀랐다. 고등학생, 중학생 들이 대부분이었다. 동아리 사람들이 '스쿨을 다녀야 한다, 어떤 쌤 레슨 좋다' 떠들곤 해 취미로 배우는 대학생들이 가장 많을 줄 알았는데, 입시생이 대부분이었다. 대부분 10대 후반이었다는 게 놀랐다. 이른 나이부터 준비를 하는구나 생각했다. 춤이 입시 준비면 당연하지만.. 중학생도 종종 있었고 아주 가끔 나와 같은 20대들이 수업을 들었다. 학창시절 기숙사 학교에 다녀서 공부 외의 분야를 노력하는 학생들을 보는 건 신선했다. 학창시절 교실은 조용하고 공기가 정체된 것 같았는데, 여기는 학원임에도 불구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학원이 재밌을 수 있다고는 내 학창시절을 생각했을 땐 비춰 봤을 때 전혀 생각치도 못한 일이었다. 인간은 역시 움직여야 행복을 느끼게 설계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수업이 끝나기 전 그룹을 나눠 각자 오늘 익힌 안무를 보여주는 시간에 학생들은 서로 환호하거나 응원해주곤 했다. 같은 안무여도 사람마다 스타일이나 느낌이 달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웃음과 에너지가 가득 넘쳤다. 올 때마다 학생들의 에너지를 받는 것 같았다 어느새 이 분위기가 좋아져 유연성이 중요한 운동을 한다는 생각으로 한동안 주에 한 번 정도 이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이렇게 1년 가까이 다닌 댄스 학원은 내게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학원을 다니는 사람들과 크게 친해지지는 못 했지만 10대 얘들도 가끔 있는 20대 얘들도 모두 친절하게 대해줬다. 크게 관심이 없으니 싸울 일도 없고 친하지 않지만 친절만 있는 상태. 딱 이 정도의 관계가 그 때의 내게 너무 좋았다. 너무 냉철하게 말했지만, 그것 외에도 원래 춤으로 입시하는 얘들은 이렇게 밝고 착한가 생각하고 나도 고등학생 때 취미로 댄스학원을 다녔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았다. 

댄스 학원을 다닌지 2개월이 지나고 새해가 되었다. 나는 26살 대학원생이 되었고 내가 듣던 클래스에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다. 새해 첫 클래스, 새로운 얼굴들이 다수 보이고 그 중 연습실 한 쪽 거울 벽에서 연습을 하고 있는 학생이 있었다. 연예인 연습생을 보면 이런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키는 작은 편이고, 섹시하다기 보단 귀염상이었고, 내성적이면서도 생기가 넘치는 밝은 표정을 가지고 있었다. 특징적인 건 볼살이 매우 통통했다. 눈이 크고 볼에 뭔가를 머금었을 정도로 볼륨감이 있어 디즈니에 나올법한 토끼 혹은 다람쥐를 매우 연상시켰다. 이름은 지연이라고 들었다. 행동을 보면 뭔가 소동물을 느낌이 났다. 
수업을 같이 들으면서 지연이를 보면서 얼핏 나랑 비슷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말이 거의 없는 편이고, 내성적이었지만 세상에 대해 열려 있었다. 뭔가를 거부하는 느낌이 없고, 호기심을 가지고 매번 수업 때 성실히 연습하며 눈에서 빛을 잃지 않는 모습이 신기했다. 어느새 수업 들으면서 얘를 관찰하는 게 취미가 되었다. 매번 밝은 분위기로 거울 앞에서 연습하는 게 연예인 연습생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 달 쯤이 지났나, 어차피 신경도 쓰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얘 인스타를 팔로우 했다. 아이돌 구경하는 것처럼 순수하게 연습하는 모습을 더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학원생(26살), 고등학생(19살)이고 나는 말도 없이 혼자 수업만 듣고 나가는 편이라 이 이상 관계가 진전될 거라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느 순간부터 지연이도 나를 종종 보는 것 같았다. 자신을 그런 모습으로 바라봐 준다는 게 전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분 나쁘지 않은 듯 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4월 중반 어느 날. 댄스 학원에서는 연습실 열쇠를 두꺼비집 안에 넣어두고, 연습실 문이 잠기면 수강생들이 그걸로 문을 열었다. 그 날은 지연이가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고 다른 사람들은 다 들어갔다. 내가 마지막이기도 하고 지연이가 문을 열었는데 지연이만 남겨두고 나도 쪼르르 들어가긴 뭐 했긴 때문이다. 지연이가 다른 손은 내린 채 한손으로 열쇠를 넣어서 내가 두꺼비집 문을 닫았다.
그러자 지연이가 내 손 위에 손을 얹고 살짝 눌러 두꺼비집 잠금장치를 닫았다.
사고가 잠시 멈췄다. 평정심을 유지하다 연습실에 들어가 앉자, 미소가 베어나왔다. 거울 맞은 편  마찬가지로 미소를 참는듯한 지연이의 모습이 보였다. 

 날 이후 지연이가 급격히 의식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서로 말 한마디 나눈 적 없었지만, 서로 근처에서 연습하며 서로의 행동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깊은 교류가 있었다. 눈 마주침과 서로 의식하며 하는 작은 행동들이 기억에 남았다. 말 한마디 없이도 이렇게까지 관계를 쌓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처음 만난 후 이렇게까지 호감이 생기기까지 5개월이 지났을까, 그런데 서로 아직 가벼운 인사 외에 한마디를 한 적이 없었다. 바뀐 건 서로를 편히 쳐다보게 된 것. 그렇게 몇 개월을 지냈어도, 서로 아직 말은 한마디도 못 나눈 게 우리의 모습 같았다. 

그 외에 알게 된 지연이 특징들 몇가지. 살이 찌기 쉬운 편인 거 같았다. 연휴 후 갑자기 살이 많이 쪄서 타났는데, 그 중 볼이 특히 통통하게 살찐 게 다람쥐가 볼에 먹이를 저장한 모습 같았다. 더욱 놀라운 건 그 일주일 뒤에 배꼽이 드러나는 티셔츠를 입고 왔다는 것이다. 살 찌고 빠지기 쉬운 체질이거나 자기관리가 철저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또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게시물에 댓글이 달리면, 남녀 친구들 상관없이 일일이 답변해 주는 모습을 보였다. 할 말 없는 댓글이나 별생각 없이 가볍게 단 댓글도 무시하지 않고 정성껏 답변해 주는 모습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것을 느꼈다.

6월 중반이 되자 아쉽게도 지연이는 이 클래스를 안 듣게 된다고 한다. 마지막 날 클래스 사람들끼리 간단히 인사를 했다. 그래도 같은 학원이고 오다가다 마주치겠지 했지만 결국 그 후 2개월 동안 지연이를 못 보게 되었다. 

얼마 후 수업의 강사님과 다른 강사님이 합동으로 진행하는 팝업 클래스를 연다고 한다. 마침 내 댄스 학원 등록이 끝나는 기간과 같았고 이 클래스를 마지막으로 댄스 학원도 그만 다닐 생각이었다. 처음엔 좋았지만 깊게 친해지지 못하는 관계에 조금 회의를 느꼈고, 이제 다른 할 게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지연이라면 이 클래스를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분 다 지연이가 자주 듣는 클래스의 선생님이었다. 만약 아니라면 이제 지연이는 못 보게 되겠지만.

그리고 예상은 맞았다. 8월 마지막 날에 진행된 이 클래스는 사람들이 많이 신청해 연습실은 붐볐다. 수업이 시작되고 몸을 풀고 있자 5분 뒤 지연이가 왔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어떻게 할지 몰랐다. 애초에 사람이 너무 많았고 시끄러워 머릿속에 시뮬레이션하던 '오래만이에요, 잘 지냈나요'로 대화를 열겠다는 방안은 불가능해 보였다. 자리도 떨어져 있어 곁으로 가기에는 눈에 너무 띄었다. 그렇게 어느덧 클래스 시간은 막바지를 향해 갔다. 

수업이 끝나고 원으로 둘러앉아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앉고 마지막에  지연이가 앉을 자리는 내 옆 밖에 없었다. 지연이 쪽을 보자 뭔가 허탈한 표정이었다. 실망도 언뜻 보이는 것 같은. 내 옆에 오길 조금 주저하다가 옆에 앉았다. 어느덧 질문시간은 끝나고 수업을 마치며 모두 일어났다.

아, 이대로 끝나는 것이구나. 
내 한계였다. 사람들과 친해질 줄 모르고 내성적이어 말도 없으니, 시선을 주는 것 외에 호감을 표현할 방법을 몰랐다. 사람들이 싫고 낯가림도 심하니 다같이 있는 곳이면 말이 없었다. 대화로 인해 자연스레 생기는 흐름이 없으니 뭘 해도 어색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선생님이 말했다. 
'아, 잠깐만요. 아쉬우니 다같이 사진 하나 찍고 가자' 
'좋아요~!'
'손은 어떤 모양으로 하지~'
'하트! 하트요'

사진 찍으러 거울 앞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순간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다같이 있는 이 자리에서 어색하지도 않고 눈에 크게 띄지도 않으며 내 호감을 표현할 방법. 
나도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시선은 거울 속 지연이를 보며. 지연이는 좀 떨어진 왼쪽 아래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표현이었다. 지연이가 이쪽을 보고, 그제서야 지연이의 표정에도 미소가 넘쳤다. 이런 식으로 호감을 표현하면 되는구나 처음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런 게 서로를 인식하는 우리들 나름의 방식이었던 거 같다. 

그리고 다음 날, 지연이 인스타 스토리에는 아담한 하얀색 하트가 떳다. 인스타 스토리에 어제 춤 영상을 찍은 것과, 흐린 배경에 하얀색 하트 이모티콘이 뜬 것과, 노래 가사 전체를 캡처한 스토리 3개가 올라왔던 것이다. 노래 가사는 물론 사랑과 설렘을 표현한 가사였다. 지금은 아무 관계도 아니니 이런 식으로 마음을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우리 둘이 대화한 분량만 따지자면 한 문단도 못 채울 것 같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는 건 우리 사이가 특별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이 사람과 정말 오래 사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연이를 내가 키우고 싶었다. 지연이 아빠는 얼마나 행복할까. 이 얘랑 평생 사귀게 되어도 행복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또 나중에 현실적으로 지연이가 나이를 먹어 이성적 매력이 떨어지더라도, 지연이 같은 딸을 낳으면 또 얼마나 귀엽고 행복할까 생각했다. 이런 얘를 만나게 되다니..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말주변이 뛰어나지도 않아 대부분 혼자였고 친구도 없었다. 사람들과 관계를 쌓는 게 어려웠다. 이대로 사귈 사람이 없으니 얘를 사귀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았다. 
내 가장 큰 문제는 인간관계였다. 직업적 성공은 이대로 대학원생 생활을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크게 뛰어나진 않지만 노력한 만큼의 결과는 나와 남에게 뒤쳐지질 않을 자신이 있었다. 내 가장 큰 열등감은 인간관계였다.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법도 모르고, 알게 모르게 사람들에게 배척받기 일수 였다. 앞으로 필사적으로 이러한 면을 발전시키자고 결심했다. 
이성관계 없이 26살이라는 사실도 드러내기 무서웠다. 어디서 능력없으니 고등학생 구슬려 사귄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까. 일단 아무나 사귀고 지연이 만나면 헤어지고, 나 자신과 사람들에게 떳떳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었다. 
언제 볼지는 모르나 다시 지연이를 만날 때까지 인간관계 면에서도, 내 능력 면에서도 많이 발전한 모습으로 만나야지... 그렇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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