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리가 분리된 후 정기 연습 장소가 다른 라틴바로 변경되었고, 학생들이 직접 수업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후 인원은 더욱 줄어들었지만, 수업은 원활하게 진행되었다.
개편 후 두 번째 기수에서는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두 개의 클래스가 개설되었다. 첫 번째는 심화 클래스, 두 번째는 공연을 준비하는 클래스였다. 두 클래스 모두 이글 님이 담당했다. 6주 과정으로 구성된 클래스 수업비는 각각 5만 원이었으며, 클래스를 모두 수강하면 일부 수업비를 환급해 준다고 했다.
나는 계속 동아리 활동을 이어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사교 댄스에 대한 관심이 예전만큼 크지 않았고, 동아리 내 인간관계도 거의 고정되어 있었다. 신규 회원 유입도 많이 줄었다. 그래도 이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동아리 활동을 마무리하자는 마음으로 클래스를 신청했다.
수업이 진행된 지 약 3주쯤 되었을 때, 이글 님이 공연 희망자를 모집했다. 공연은 홍대와 강남의 라틴바에서 3~5회 정도 예정되어 있다고 하며, 참가 희망 여부와 각자 선호하는 파트너를 조사했다. 다만, 모든 신청자가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걸렸다. 나는 홍대 공연만 신청했다.
그러나 얼마 후 발표된 공연 파트너 배정 명단에서 나는 빠져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이글 님과 친하지는 않았지만 관계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자기 공연을 한쪽만 한다고 해서 나를 제외했나?
마침 같이 수업을 듣던 워터 님이 문자를 보내왔다. 자신도 공연을 신청했는데 명단에서 빠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단톡방에서 이글 님에게 공연 신청을 했는데도 나와 워터 님이 제외된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글 님은 갑자기 "나는 잘못한 게 없냐"는 톡을 올렸다. 분명 여자들한테 무분별하게 연락했을 거라는 짐작으로 뭐 하나 걸리라고 찔러보는 거다.
'네. 잘못한 거 없는데요.'
웬만하면 갠톡을 거의 안 했기에 딱히 찔리는 일도 없었고, 애초에 그 이후에 제대로 된 썸도 없었다.
그러자 이글 님은 "그렇죠… OO님은 잘못한 거 없죠…" 라고 답했다. 이어서 다음과 같은 톡을 보냈다.
'그 이유를 공지방에서 말할까요 아니면 OO님에게 개인 톡으로 보낼까요?'
'개인 톡으로 보내도 되고, 딱히 여기에 말해도 상관 없습니다.'
'개인 톡으로 보내달라는 말이죠?'
잠시 생각하다 '네' 라고 답했다.
이글 님은 내가 공연 멤버로 선정되지 않은 이유는 실력 부족과 여성들의 선호 때문이라고 했다. 워터 님은이글 님으로부터 "너무 늦게 신청해서 제외되었다" 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수업에서 이글 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었다. 공연이 예정된 라틴바에서 공연 인원을 7쌍으로 제한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연 클래스에는 남녀 8쌍이 있었기에, 한 커플은 빠질 수밖에 없었다. 성격이 내성적이어 빠져도 아무 말 못할 거 같은 사람들을 골랐다고 생각했다.
몇 커플 씩 돌아가며 공연을 서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이글 님은 침울한 표정으로 아직 정해진 공연은 이것 하나 밖에 없다고 답했다. 3-5회 공연은 아직 계획일 뿐이었다. 알겠다고, 내가 빠지겠다고 했다. 어차피 댄클 이번 달까지만 할 생각이었다. 사교 댄스도 이제 그만 두고, 다음 달부터는 알바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 후 어쩐 일인지 워터 님은 다시 공연 멤버에 포함되었고, 대신 공연 신청을 기한 지나서 했다는 다른 여자분이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 여자 분은 자신이 기한 내에 신청했다며 불만을 제기했고, 이후 수업에 나오지 않았다.
얼마 후 공연 일정이 잡혔다며 하겠냐는 제의에 그렇다고 답했지만 결국 그 공연은 취소되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수업 5주차 공연 클래스, 남자 한 명이 남아 돌았고, 파트너도 없었다. 내가 수업에 있는 게 방해되는 게 명확했다. 안무 진도는 이미 다 나갔고, 수업 내용은 공연을 위한 디테일 조정이었다. 5분간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있다가 조용히 연습실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던 와중 수업을 같이 듣던 사람에게 전화가 왔었다. 이글 님이 나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전화가 온 걸 알아챈 건 이미 20분이 지난 후 여서, 오늘을 그냥 돌아간다고 했다.
수업 6주 차는 리허설이었다. 다른 레벨 수업을 기웃거리다 헬퍼로 들어갔다. 그렇게 이번 기수 수업이 끝났다.
이글 님은 환급 대상자는 자신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하라고 공지했다. 나는 환급 대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글 님은 "심화 클래스와 공연 클래스 모두 전체 출석해야 환급 대상"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연을 희망했음에도 배제되었고, 이후 공연 클래스 수업은 사실상 리허설로 진행되었으며, 방해될 것 같아 헬퍼로 참여했으니 실질적으로는 전체 출석이나 다름없지 않냐는 불만을 제기했다.
그러자 이글 님은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공연이 한 번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영상도 찍을 예정이었는데, 끝까지 열심히 하지 않고 중간에 수업을 나간 건 내 잘못이고 애초에 내 실력 부족이라는 (나는 납득하지 않았지만) 내용이었다.
짜증났다. 다음 달에도 자신의 수업을 계속 들으란 소린가? 게다가 이미 동아리 수준을 넘는 금액인 10만 원을 받았으면서, 수업을 이렇게 운영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공연 못할 사람이 있었으면, 애초에 공연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뭔가를 배울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짰어야 하는 것 아닌가?
완벽주의 성향에, 잘못을 넘어가주면 내가 잘못한 거고 자신은 완벽해야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동아리가 분리되고 뭔가를 성공시켜야 하는 입장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운영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동아리 내에서 친한 사람도 적었고, 이글 님은 새 운영진의 핵심 인물이었다. 새 운영진은 분리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갈등을 원치 않을 것이었다. 문제를 제기하려면 단톡방에서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려야 했지만, 대부분의 회원들은 그저 조용히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을 것이다. 그냥 동아리를 나왔다.
그렇게 1년 다닌 댄클 생활을 마무리 했다. 지금 생각하니 제 2의 피해자가 또 생길수도 있으니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고 나올 걸 후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