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나간 모임에서 간단히 회식을 하게 되었다. 나는 여자 두 분과 함께 3명이서 앉게 되었다. 같은 모임이긴 해도 활동할 땐 말할 기회가 없어 초면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자 둘은 고등학교 때 친구라고 한다. 통성명, 학교, 가족관계, 모임 오게 된 이유 등 의례적인 정보 교환을 마치고 침묵이 흘렀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고민하다 새로운 질문으로 다른 화제를 꺼내려 했지만, 대화는 계속 끊기기 마련이었다.
짜증난 건 여자 두 분 중 한 명이 거의 말을 안 했다는 점이었다. 정보 교환을 하면서 남자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사람이었는데, 무슨 얘기를 꺼내도 단답으로 끝내는 데다 내가 다른 한 명과 대화가 잘 이어질 때면 갑자기 친구에게 관심을 달라는 듯 말을 걸어 계속 대화가 끊겼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둘이서 그 주제로 대화하기 시작했다.
내심 짜증이 났다. 나도 대화를 잘 이끌어내는 편은 아니지만, 부담스럽지 않게 열심히 화제를 생각해가며 대화를 이으려 하는데, 한 분은 그렇다 치더라도 남자친구가 있다는 여자분은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일부러 방해하나? 친구 따라 왔지만 자신은 남자친구가 있으니 모임에서 다른 남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은 피하고 싶고, 그렇지만 내 친구가 다른 남자와 친해지는 모습은 보기 싫다는 심보일까? 본인은 거의 말을 안 하면서?
결국 나도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게 되었고, 곧 화제는 같은 모임인 옆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꺼낸 재미난 경험에 대한 리액션으로 흘러갔다. 모임이 끝나고 인사하고 잘 헤어지긴 했다.
모임이 끝나고 약간 후회됐다. 내가 대화를 못 이끈 건지, 아니면 어쩔 수 없었던 건지... 누구나 그 화제에서 대화를 이끌어 나가기 힘들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다른 또래들에게 상담하면 어떤 반응을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뻔했다. 자기와 맞고 안 맞는 사람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내심 웃고 즐길 수 있는 분위기로 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건 내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말은 그렇게 해도 자기 안에서의 평가는 냉정한 편이었다. 남자나 여자나. 대화를 잘 이끌어 가지 못하는 건 내 큰 콤플렉스였다.
또 한 번 비슷한 상황이 다른 모임에서 연출되었다. 나를 포함해 남자 두 명, 여자 두 명이서 앉게 되었는데, 어떤 질문을 하거나 화제를 꺼내도 여자 둘 모두 단답으로 말이 끊겼다. 둘 다 내성적인 성격인 것을 감안해도 이상할 정도로 말을 하지 않았다. 처음 본 친하지 않은 사이는 남녀관계로 생각되어 그런가…
내심 짜증이 나 말을 건네지 않기 시작했다. 이외였던 건 같이 앉은 남자애였다. 끊임없이 화제를 꺼내고 분위기를 바꾸려는 모습에 감탄했다. 계속 얘기하고 농담을 해서 웃겼어도, 둘은 다시 원래대로 침묵하기 마련이었다. 계속 여자 둘에게만 질문하면 어색하니, 나에게 먼저 질문하고 내 대답은 대충 듣고 바로 여자들에게 말 건네는 게 보였다. 그래도 이렇게 침묵이 흐르는 것보단 나았다.
나는 사실상 포기 상태였다. 애초에 말을 잘하는 편도 아닌 데다, 어떤 얘기를 해도 차갑게 이쪽을 바라보는 모습에 감정이 상했다. 완전히 면접보는 느낌이지 않은가? 친해지려고 온 게 아니라 “일단 네가 어떤 사람인지 보겠다”는 듯한 눈빛에, 지금 상황이 사실상 소개팅 비슷한 상황이라는 걸 이해했다.
그런데 어느샌가 대화가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그 남자애의 끈기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여자애 한 명과 그 남자애만 거의 대화를 했지만, 처음의 그 분위기에서 지금 상황으로 바뀔 수 있다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이건 진짜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둘은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호감이었던 것 같다. 그 후 같이 걸으며 대화해도 어색하지 않았던 걸 보면… 둘은 정말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것이다. 한명은 특히 심히 내성적일 정도로. 애초에 대화가 필요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 날 그 남자애와 여자애는 연락처를 교환하고 연락하는 사이가 된 것 같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