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학문과 신앙 (3) - 학문의 재미

 

사람은 죽으면 영혼만 남는다. 그렇다면 최대한 많은 경험과 지식을 쌓는 것이 삶의 목적일 것이다. 유튜브로 교양 강의를 보다가 점차 지식을 얻는 자체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방구석 백수 생활을 하며 하루 종일 교양 강의(주로 순수과학) 보다 보니, 어느 순간 알고 있는 내용이 반복되었다. 이상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특정 과목을 깊이 공부해야 한다는 깨달았다. 두꺼운 전공책을 혼자 독파해야 하나 걱정되는 와중, OCW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OCW Open Course Ware(공개 강의) 약자로, 대학 강의들을 녹화해 공개한 것이다. MIT, 하버드, 유명 인도 공과대학 등에서 무료로 유투브에 강의를 제공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강의의 질이었다. 대학 강의에서는 교수님들이 칠판에 공식 개만 적고 나머지는 말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공개 강의는 달랐다. 어려운 유도 과정도 직관적인 해석과 함께 PPT, 3D 애니메이션, 실제 실험 시연 다양한 시각 자료를 활용해 설명해 주어 훨씬 쉽게 이해할 있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전공인 전자공학에도 흥미를 느낄 있었다.

 

물질 세계에서는 너트와 볼트, 콘크리트와 철근이 모여 기계와 건물을 만든다. 작은 단위들이 차곡차곡 쌓여 거대한 구조물을 이루듯, 정신적 세계에서는 개념들이 쌓여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 간다. 전제에서 시작해 유도 과정을 거쳐 결과로 이어지는 전개가 반복되며, 학문의 틀이 잡혀가는 것이다. 물질 세계에서 도구가 필요한 것처럼, 정신 세계에서는 개념이 역할을 한다.

학문을 공부하며 이런 구조가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다. 마치 탄탄한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개념들이 서로 연관되고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신비로웠다. 특히 공학이 좋았던 이유는, 사회과학이나 생물학처럼 가지 개념에서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개념으로 확장되고 발전해 나가는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공학에 특별한 재능이 있었던 아니지만, 과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말했듯이, 꽃의 생리나 분자 구조, 화학 작용을 몰라도 아름다움을 감상할 있었다.

 

그렇게 OCW 강의를 하나씩 찾아보던 ,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무언가에 대한 전문가가 되는 방식으로는 누구도 찾지 못한 진리를 발견하기 힘들지 않을까? 하나를 깊게 파서 삶의 진리에 다가갈 수 있었다면, 각 분야 교수님들이 종교적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교수님들은 이미 자신들의 학문에서 인생에 적용할 만한 핵심 통찰(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 광속 불변의 법칙, 유전자의 존재 ) 일반 교양 강의로 정리해 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물리학이나 생물학 같은 특정 분야에 세상의 진리가 있다고 믿는다면, 교수님들보다 더 깊이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봤자 단 한 가지 사실을 겨우 알게 될 뿐이고, 결국 세상의 진리를 파악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런 방식으로는 내가 원하는 세상의 본질에 해당하는 진리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리를 얻으려면 한 분야를 깊이 파는 것보다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익혀 통찰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책과 학문과 신앙 (4) - 세계관

 

나는 인간 자체가 세상 법칙을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다. 도구나 건물, 사회 체제를 만든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물리 법칙 세계가 돌아가는 법칙 자체를 변화시킬 있다고. 예를 들어, 유전자 조작은 원래 불가능했지만, 연구자들이 정신적 (노력과 의지) 쏟으며 어느 순간 가능해진 것이 아닐까? 어떤 사실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이란, 의지를 부딪쳐 그것이 가능하도록 세계의 법칙을 변화시키는 행위라 생각했다. 기존의 다수 의지로 이루어진 세계의 법칙을 완전히 덮어쓰기에는 힘이 부족하므로, 기존 법칙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내가 원하는 포함할 있는 새로운 우회로를 만들어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이 그렇게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장은 인간이 다른 생물과는 다르게 특별하다는 생각에 기반했으나, 과학 교양 강의를 보면서 인간의 고유 능력으로 여겨졌던 협동과 지성도 사실 유전자의 변이에 의해 우연히 방향성이 정해진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는 윌리엄스 증후군과 유사한 유전자 변이를 통해 인간의 호의를 얻어 번성한 것처럼, 인간이 공동체 단위로 협력할 있었던 것도 특정한 유전자 변이 떄문일지도 모른다. 철학에서 그토록 찬양하는 인간의 이성도, 결탁과 음모가 넘치는 집단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달된 능력을 수학이나 과학에 이용하는 (사회적 두뇌 가설), 이성 자체가 신비한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NOTCH2NL 유전자의 우연한 변이로 인류는 뇌를 크게 확장하는 방향으로 진화했고, 그게 성공적이어 인간이 먹이사슬의 최상위 군림할 , 다른 생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간이 특별하지 않다면 삶의 목적, 아니 우주의 목적은 무엇일까? 옛날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꾸준히 발전한 것. 고도화된 지식 체계 자체가 우주의 목적이 아닐까. 새로운 물질이나 정책이 생겨나면 기존에 있던 것들과 상호작용하는 방법이 생겨난다. 인류 역사 얼마나 없이 많은 학문, 스포츠, 예술, 사람들의 고유한 경험이 생기고 없어지고, 생물 역사 얼마나 많은 유전적 변이들이 생기고 사라졌을까? 팽창하는 우주는 축적되는 정보 자체를 나타낸다. 우주의 목적은 최대한 많은 정보를 축적하는 것이리라.

 

이유는, 만약 우주에 자아가 있다 아마 재미를 추구하기 때문 아닐까. 처음부터 완벽하면 정체되어 있고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각자의 한계가 있기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전략을 짜며, 과정에서 학문과 예술이 탄생한다. 만약 우주가 정말 하나의 생명체라면, 죽음 이후 자신은 우주와 통합되어 이런 깨달음을 얻지 않을까? "이런 유전자와 환경적 조건을 설정하면 이런 삶을 살고, 이렇게 상호작용하게 되는구나" 하고.

 

종교 지도자들이나 명상하는 사람들, 혹은 마약을 해보거나 몰입 상태를 경험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내가 세계이고, 세계가 "라는 느낌이다. 이는 결국 우리가 모두 하나라는 본질적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함께 정보를 쌓아야 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죽이거나 해하는 것일까? 그래야 전략이 생기기 때문이다. 유전적 차이로 인해 사람마다 강점과 약점이 다르고, 이를 기반으로 각자가 최선의 전략을 선택한다. 결과, 세계는 전체적으로 발전해왔다. 전쟁으로 인해 문명이 일시적으로 퇴보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부작용에 불과하며, 흐름에서는 여전히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상, 객관적 근거는 하나도 없는 망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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