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학문과 신앙 (1) - 삶의 의미
20대 초반을 방 안에서만 지냈다.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도 않고, 사람을 만나지도 않고, 혼자 방에 틀어박혀 시간을 낭비할 뿐이었다. 대인기피가 심해 과식과 불규칙한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종종 아픈 곳도 생겼다. 애니메이션을 하루 종일 시청하며 가상세계로 도피하려 했지만, 나는 결국 현실에 사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러고 나니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노인이 되고 나서야 할 고민을 지금 하게 되다니 싶었지만, 영화, 음악, 소설, 애니메이션, 드라마, 예능, 피아노... 사람을 만나지 않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본 것 같았다. 이런 걸 하지 않을 때는 방 안에 정적이 감돌아, 죽고 나면 무엇이 남는지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일단 신은 없다고 생각했다. 집안이 천주교 신앙을 가졌기에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식사 전 기도를 항상 했지만, 어느 날 진지하게 신이 존재하는지 고민해 본 뒤 없다고 결론짓고 기도를 그만두었다. 성경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하고 싸우지 말며 평화롭게 지내라고 가르치지만, 전쟁과 살인이 몇천 년 동안 계속되었다면 신은 없다고 봤다. 근대 과학이 발전한 이후에는 기적이 보고된 적도 없었다. 종교는 억제력이 없었던 옛날에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불교는 어떤가? 자기 수양을 통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지만, 단지 그것뿐인 것이 아닐까. 수도승이 명상을 통해 진리를 깨닫고 현실 세계를 변화시켰다는 사례는 없었다. 명상을 통해 뇌의 알파파와 체온을 의지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자기 정신 안에서는 뭐든지 생각하고 할 수 있다. 종교가 의미 있으려면 현실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거의 모든 종교의 핵심 요소가 아닌가.
죽을 때 사람은 육체와 물질을 놓고 떠난다. 사람들이 사후 세계를 생각하는 것은 영혼은 존재한다는 게 전제이다. 무로 되돌아 간다면 어차피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럼 영혼만이 오직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치매나 사고 등으로 뇌에 손상을 입는 경우를 제외하면, 죽을 때 지식과 경험을 그대로 가지고 간다. 아니, 사실 뇌에 손상을 입어도 인간의 영혼은 그대로인 것이 아닐까? 영혼을 전파에, 뇌를 텔레비전에 비유한다면 텔레비전이 고장 나도 전파는 그대로 남아 있다. 단지 전파를 표현할 기기가 고장 났을 뿐.
그렇다면 최대한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쌓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경험이 응축된 책을 읽고, 다양한 사고방식을 익힐 수 있는 학문을 공부하는 것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현대에 들어서고 어떠한 종교도 기적을 입증하지 못 했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학문이야 말로 진정한 초능력이자 신앙이 아닐까. 사람들 사이의 법칙인 정치와 현실세계 그 자체를 변화시키는 과학. 그렇게 공부하다 보면 세상의 진리를 발견하고, 살아 있는 동안 의지대로 자유롭게 이 세계를 벗어날 수 있게 되면 가장 좋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믿음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유튜브 교양 강의를 보고 책을 읽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 진리라고 부를 만한 것을 찾기 위해 궁금한 것을 하나씩 해결해 나갔다.
책과 학문과 신앙 (2) - 천재와 재능
천재들은 무엇이 다른가? 지식을 얻는 것으로 영혼이 성장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알아야 될 것이었다. 무작위 숫자 수십 개를 몇 분 만에 외울 수 있는 사람들이나 체스 선수처럼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예측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한편, 나도 내가 모르는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면 그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아인슈타인과 문워킹을'이라는 책을 읽고, 기억술이라는 분야가 존재하며 이런 것들을 잘 외우기 위한 방법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억의 궁전'이라는 방법이 있다. 우선 인간은 이미지와 공간을 잘 기억한다. 무작위 단어는 기억하기 어렵지만, 무작위 사진을 보여주면 며칠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다. 핵심은 익숙한 공간에 순서를 정해 놓고, 사물들을 그곳에 배치해 기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칼', '모자', '아이스크림', '난독'이라는 단어를 순서대로 외워야 한다면, 집에 들어왔는데 현관에서 칼을 든 강도를 마주치는 이미지, 거실에서 모자 쓰고 춤을 추는 동생, 부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엄마, 아빠가 내 방에서 찡그리며 신문을 읽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기억하는 방식이다.
숫자 변환 기억법이라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ㄱ은 1, ㄴ은 2, ㄷ은 3… 등으로 대응시켜 무작위 숫자 11323(ㄱㄱㄷㄴㄷ)을 '고교 다녔다'라는 문장으로 변환하거나, '고기', '덧니', '독' 같은 단어로 변환한 뒤 기억의 궁전에 배치해 외우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핵심 도구들을 장기기억에 저장해 두고, 이를 기반으로 스토리나 영상을 만들어 기억하는 것이 기억력 대회 선수들의 방법이었다. 무작위 단어나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부호화’가 핵심이었다.
기억력은 외우는 것이니 그렇다 쳐도, 체스는 다르지 않을까? 체스 선수들은 일반인과 달리 몇 수 앞을 예측해야 하니, 진정한 의미에서 지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알고 보니 체스에도 이론이 있었다.
체스 이론은 오프닝, 미들게임, 엔드게임으로 나뉜다. 오프닝은 기물들을 유리한 위치에 배치하는 정형화된 수순으로, 선수들이 초반에 빠르게 수를 둘 수 있는 이유다. 정해진 이론을 따라 순서대로 두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오프닝 이론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수를 계산하지 않아도, 폰 구조나 중앙 차지 등 중간 상황의 유리함을 평가할 수 있는 개념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미들게임은 오프닝 이후의 전략 싸움으로, 이 단계에서 승패가 결정된다. 엔드게임은 기물이 몇 개 안 남은 상황에서 체크메이트를 만드는 방법들로, 이 역시 정형화되어 있다. 선수들은 오프닝과 엔드게임 이론을 철저히 외우고 있으며, 수읽기 능력 또한 선수들 간에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승부는 주로 미들게임에서의 전략과 상대 기보를 얼마나 깊이 연구했느냐에 따라 갈린다고 한다.
체스 선수들은 판에 놓인 기물 배치를 한 번 보고 기억하고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도 파악할 수 있지만, 기물들이 무작위로 배치된 판을 외우는 건 일반인들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체스 선수들이 몇 수 앞을 읽을 수 있는 건 체스에 한정된 것이었다.
그럼 수능 수학은 어떨까. 수학 공부는 재능이 아닐까? 마찬가지로, 유튜브에서 공부로 성공한 사람들을 찾아보니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결국 수학 문제도 패턴이라는 것이었다. 개념을 응용해서 낼 수 있는 문제 패턴은 어차피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보다 보면 패턴이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일단 못 풀어도, 양이 중요하니 답지를 보고 넘어가야 한다고 한다. 수학도 결국 암기의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이 들면서 우연히 '1만 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책을 읽고,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분야의 전문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장기 기억에 저장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단기 기억에 약 7~9개의 정보만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개념을 잘 구조화하여 장기기억에 넣어두는 것이 전문성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이론과 학문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어떤 개념을 정리화하고 체계화하는 것. 체스 오프닝 이론과 공학 책에서도 어떻게 이런 식으로 생각했지, 어떻게 이런 것들을 이런 식으로 쳬계화해낼 수 있었을까 신기했다.
천재와 재능은 사실 없었구나 실망하는 한편, 나도 충분히 시간을 들이고 노력하면 못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