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입 첫 학기가 시작되었다. 나 홀로 정체된 것만 같던 방을 떠나, 부모님이 얻어 주신 학교 뒤쪽 언덕의 자취촌으로 향했다. 항상 청춘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젊음의 활기가 넘칠 거라 생각했던 대학 자취촌은, 모양 비슷한 다세대 주택들이 침묵 속에 늘어선 곳이었다. 우리 학교가 산 위에 있는데다 번화가도 없다시피 해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그렇게 조용했던 자취촌 곳곳에서 한두 명씩 나와 학교로 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첫 등교, 전체 편입생 설명회가 끝나고 학과별로 나뉘어 한 강의실에 모였다. 20명 남짓 모인 우리를 20명 남짓 모인 우리를 남자 선배 한 명과 여자 선배 한 명이 맞이했다. 편입생은 매 학기 15학점 가까이 수강해야 하고, 타과 출신은 2학년 기초 전공도 필수로 들어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곧이어 전자전기 편입생 단톡방이 만들어졌고, 다 함께 식당으로 이동해 간단한 저녁 겸 술자리를 갖기로 했다.
무리를 따라 걸으며 나는 망설였다. 같은 전공으로 편입했으니, 2학년 수업을 듣는 다른 동기들과 수업이 겹칠 일이 거의 없을 터였다. 게다가 가도 별다른 말을 섞지 못하고 어색하게 앉아있다 올 것이 뻔했다. 인솔하던 여자 선배에게 먼저 가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조용히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며칠 후, 단톡방에 "지금 시간 되는 사람 학식 사준다"는 톡이 올라왔다. 마침 할 일도 없던 터라 나가보니, 설명회를 진행했던 그 남자 선배가 나와 있었다. 시간이 되는 사람은 나뿐이었고, 우리는 어색한 정적 속에서 몇 마디 질문을 교환하며 식사를 했다. 밥을 한술 뜨고, 다시 밥을 뜨는 소리만이 식당을 채웠다.
선배는 "전공 수업 할 만해요?" 같은 의무적인 질문을 던졌고, 나도 "네. 같은 과에서 편입해서... 아직은요." 같은 의례적인 대답을 했다. 밥을 먹고, "앞으로 보면 인사해요."라고 하고 헤어졌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던 방에서 벗어났으니, 편입 첫 학기만큼은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전공 다섯 과목과 필수교양 한 과목을 꽉 채워 신청하고, 밴드 동아리와 월 1회 벽화 봉사를 하는 동아리에도 가입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밴드 동아리는 환영회 이후 한 달 간 공식 활동이 없었고, 벽화 봉사 동아리도 봉사가 없을 땐 주 1회 회의를 명목으로 모여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결국 대부분의 시간은 방에서 전공 공부를 하는 단조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그래도 모든 것이 새로운 자극이었다. 동아리 환영회의 들뜬 공기, 강의실을 채운 낯선 얼굴들, 수업을 옮겨갈 때마다 마주치는 수많은 인파들. 혼자 방 안에만 있던 시간과 달리, 대화 하나 없어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 그것만으로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